지난 18일 경북 영양에 위치한 교촌에프앤비 ‘발효공방1991’을 다녀왔다. 영양읍내 군청 인근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다. 외관은 MZ세대들이 흔히 ‘힙’(hip)하다고 하는 레트로(복고풍)한 분위기다. 오래된 양조장 건물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했기 때문. 하지만 살짝 틈이 벌어진 미닫이문, 흙, 짚 등 내부 구조가 드러나보이는 나무 지붕, ‘영양양조장’이 새겨진 나무 간판 등 건물 곳곳엔 오랜 세월을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옛 감성이 살아있는 고즈넉한 동네에 개성있는 빈티지풍 건물.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구색은 갖췄지만, 이 곳은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보기 어려운 시골 마을이다. 노인 인구 비중이 40%가 넘는 인구 소멸 위기 지역. 교촌치킨은 왜 경북 영양에 막걸리 양조장을 열었을까.
조선시대 양반들이 마시던 막걸리가 이 곳에서
영양에선 1926년 일제강점기 때 전국 처음으로 영양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 시기 출범한 양조장 영양탁주합동은 삼대에 걸쳐 이어올 정도로 호황을 거듭했지만 막걸리 지역 판매 제한해제 등의 여파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7년 문을 닫았다. 100년을 이어 온 전통있는 지역 유산의 폐업에 고민하던 영양군의 손을 잡은 게 교촌치킨이었다. 2022년 교촌에프엔비는 자회사인 발효공방1991을 설립하고 영양군의 도시재생사업 지원을 받아 양조장을 다시 열었다. 건물 앞 켠에는 지역 농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소풍이 있다. 건물 뒷 편으로 들어서면 양조장이 나온다. 바깥은 겨울이지만 양조장 안은 술 익는 냄새와 열기로 가득하다. 시금털털한 내음이 구수한 알코올 향이다.
이 곳에선 대표 막걸리 제품 ‘은하수 막걸리’가 생산된다. 350여년 역사를 지닌 최초의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집필한 장계향 선생 후손 13대 종부 조귀분 명사로부터 전수받은 ‘감향주’ 양조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달고 향기로운 술’이라는 뜻의 감향주는 찹쌀과 누룩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물을 거의 넣지 않아 수저로 떠먹는 되직한 막걸리다. 쌀이 귀하던 시절 양반들만 먹을 수 있던 고급 막걸리였다. 교촌치킨을 창업한 권원강 회장도 즐겨 먹는 제품으로 알려졌다.
6도 짜리 ‘은하수 푸른밤’과 8도 짜리 ‘은하수 깊은밤’ 두 종류으로 출시됐다. 도수가 높을수록 원재료 함량이 높아 짙고 걸쭉하다. 한 달에 5000병만 생산하는 수제 막걸리로,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교촌 플래그십 스토어 ‘교촌필방’과 여의도 메밀요리 식당 ‘메밀단편’ 등에서만 한정 판매된다. 서울 광장시장 ‘박가네 빈대떡’ 매장에서도 소량 판매 중이다. 올해 10월부터는 판매처를 늘려 일부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으며 마켓컬리나 발효공방1991 네이버스토어 등 온라인에서도 일부 구매 가능하다. 다만 수요에 비해 물량이 넉넉하진 않아 영양 지역에서 90% 이상 판매되는 상황이다.
100년 전통 방식 그대로
발효공방1991은 과거 오래된 양조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막걸리를 제조한다. 생산 과정과 제조 동선 등에서 현대식 기계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100년 전통을 계승해 내부 구조를 거의 손대지 않았다. 사람 손길이 필요한 공정이 많다. 아스파탐이나 인공감미료 등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현지에서 나는 쌀만 온전히 넣어 만든다. 핵심기술은 발효 미생물을 잘 다루어 발효 및 숙성 공정을 최적화하는 데 있다.양조장은 담금실과 발효실, 병입실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담금실에선 쌀을 쪄 효모가 자랄 수 있는 증자 작업이 진행된다. 증자기에 쌀을 넣고 세미(세척) 작업을 거친 후, 쌀(침미)을 불리는 작업을 거친다. 하나의 증자기에 약 100kg의 쌀이 사용된다.
발효실로 이동해 다음 작업을 한다. 익힌 쌀에 누룩을 입혀 알코올로 변화되는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발효공방1991에선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증자기에서 찐 쌀과 전통 누룩을 발효조에 넣고 술을 만든다. 이렇게 발효된 술덧이 제성기로 이송하여 누룩 찌꺼기와 원주(찌꺼기를 걸러낸 술)를 분리 하는 체별 작업을 거치면, 원주가 내부 온도 10도에서 2~3일간 숙성에 들어간다. 원하는 도수에 맞게 정제수로 물을 타는 작업까지 마치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술을 병에 넣고 냉장 숙성시키기만 하면 된다.
김명길 발효공방1991 양조사는 “100년 전통법을 바탕으로 청정 영양 쌀만 100% 사용해 쌀의 깊은 풍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며 “최고의 품질을 내기 위해 대량 생산보다는 고품질 소량생산으로 100년의 전통과 장인정신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백종원과 경쟁…성공시 인구 유입효과 기대
교촌에프앤비는 이 발효공방1991을 확대해 대지면적 6323㎡(약 1900여평) 규모의 대형 복합테마시설을 조성할 방침이다.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이라는 명칭의 이 사업은 국비 50억원에다가 경북도비 10억원, 영양군비 40억원 등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총 100억원을 지원받아 이뤄진다. 유명 외식사업가 백종원 대표가 경북 울진군과 복합외식사업을 하겠다며 제출한 사업계획서 등과 경쟁해 선정된 경북 유일 국비 지원 사업이다. 그만큼 사업성을 인정받았다는 게 교촌에프엔비 측의 설명이다. 플랫폼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광 역량을 높여 궁극적으로 인구를 유치하는 게 목표다. 교촌에프앤비는 이 사업을 통해 인구 1만5000여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에 3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유입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주를 비롯해 고추장, 된장 등 전통 장류까지 생산해 제품군도 발표 식품 전반으로 확대한다. 외국인 대상 발효 체험 및 내부 시설 관람 등 관광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연간 40만L 가량 케파(생산 능력)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며 “복합 플랫폼을 생산 시설로서 활용하는 것은 물론 별빛 천문대·조지훈 문학관·음식디미방 등 인접 관광지와 연계한 체류형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문화관광 역량 또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영양=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