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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위기의 시대, 두 리더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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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과 인기 있는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과거 대공황이 미국을 강타했을 때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였다. 백악관 입성 당시만 해도 널리 존경받은 그는 몇 년 새 국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그 결과 1932년 대선에서 역대 가장 큰 표차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패했다. 이후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4선에 성공하고 최장기 대통령을 지냈다.

역사학자 모식 템킨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에서 “1930년대 대공황은 위기의 순간에 어떤 리더를 찾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특이한 기회였다”고 말한다. 이 책은 템킨 교수가 케네디스쿨에서 10여 년간 가르친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 강의를 바탕으로 썼다.

템킨 교수는 후버가 융통성과 공감 능력이 부족해 좋은 리더가 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전통적 보수주의자인 후버는 대공황이 닥쳤을 때 대통령의 역할은 경제를 지원하는 것이지,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보수주의적 원칙을 내세우며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자 정부 지출을 대폭 줄였다. 굶주린 참전용사들의 시위엔 무력 진압으로 일관했다.

평소 대중과의 접촉을 꺼린 후버는 연설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는 대공황의 심각성을 최대한 줄이고자 “저 모퉁이만 돌면 번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낙관적인 발언을 내놨지만, 이는 오히려 대중에게 냉혹하고 무심하게 느껴졌다. 사회 전체가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그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리더의 모습은 신임을 잃기에 충분했다.

루스벨트는 후버와 정반대였다. 루스벨트의 관심사는 특정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이루는 것보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는 취임 100일 만에 유례없는 속도로 뉴딜을 비롯한 76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총 30회에 걸친 ‘라디오 담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정부 정책을 친근하게 대화하듯 설명했다. 정부가 사람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알고 있고,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들을 위해 여러 일을 해나갈 것이란 인식을 심어줬다.

좋은 리더는 대부분 똑똑하지만 반대로 똑똑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 시절인 1960년대 국방부 장관으로 베트남전쟁 등을 치른 로버트 맥나마라는 영민한 학자이자 기업인 출신이지만, 훌륭한 리더라고 하긴 어렵다.

맥나마라는 지금까지 공공정책 및 사업의 기초로 활용되는 ‘시스템 분석’을 창안했으며, 포드자동차를 장기간의 부진에서 구해내 사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어떤 대의나 사명감보다 본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에 입문했고, 공직자로서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봉사했다. 대통령의 의중만 고려해 베트남전 확전을 밀어붙였고, 결국 미군 5만8000명과 베트남인 3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정치인에게 필요한 대의만큼은 분명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게 깊은 영감을 받은 대처는 개인과 경쟁의 역할에 대한 믿음 아래 일관된 정책을 폈다. 이른바 대처주의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대처의 사명감과 대의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영국을 넘어 세계 경제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시국이 혼란스럽고 불안정할수록 좋은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가 분명하게 판가름 난다. 시절이 평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때 리더의 역할은 현상 유지 혹은 관리에 머물지만, 위기에 직면한 리더는 고통을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의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엔 대통령과 총리 등 제도권 권력자부터 각종 사회개혁과 저항운동 등을 이끈 재야의 지도자까지, 위기를 경험한 다양한 리더의 역사가 담겨 있다. 리더, 그리고 리더를 선별해야 하는 독자 모두에게 좋은 참고가 될 만한 책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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