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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기댈 곳 없는 탄핵정국의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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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맘때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전후 국내외 경제 환경은 최근 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과 흡사한 측면이 너무 많았다. 당시 기획재정부를 취재한 기자는 지금 경제 기사들을 보면서 종종 ‘데자뷔’를 느낄 정도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글로벌 통상질서 격변이 예고된 상황이 판박이다.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통상 규제가 훨씬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국가 리더십 부재 속에 처음 트럼프 정부를 맞이한 8년 전 상황도 기업들에는 엄청난 불확실성이었다. 한국만 세계 통상질서 변화에서 배제돼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기업들의 위기감도 지금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정치적 혼란이 소비 절벽과 고용 감소를 가속화해 내수 침체가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날로 커지고, 연구기관들이 이를 반영해 다음해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끌어내린 것도 지금과 복사판이었다. 과열 조짐을 보이던 부동산시장이 정부 규제로 갑자기 급랭해 연말 경제에 부담을 주던 상황도, 고환율(강달러)이 상당 기간 지속돼 외환·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하던 것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7년 1월 말 발표된 2016년 4분기 성장률은 예상치를 웃돌았다. 민간 연구소들이 마이너스까지 점친 것과 달리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4%(당시 속보치 기준) 증가했다. 민간소비는 부진했지만 설비투자가 6.3% 깜짝 증가한 게 핵심 이유였다. 정치 혼란 와중에도 반도체는 슈퍼사이클에 막 진입해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화학 등 다른 주력 산업도 전반적으로 양호했던 덕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이후 GDP는 점차 증가세로 돌아섰고, 탄핵 정국의 경제 영향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8년 전 탄핵 정국과 지금이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현재 국내 주력 산업은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공학한림원이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반도체의 경쟁력은 약해졌다. 2차전지, 석유화학, 철강 등은 글로벌 수요 급감과 중국의 저가 공세 등에 밀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과거와 달리 이번엔 우리 경제가 ‘비빌 언덕’이 없어 탄핵 충격과 후유증이 훨씬 클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경제팀은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이후 발 빠르게 유동성을 무한 공급하고 글로벌 신용평가사 등을 만났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무리 없이 대외 신인도와 시장 변동성을 관리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과거 탄핵 정국 때처럼 경제팀이 예산 집행을 앞당기고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위기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다. 소비 진작은 물론이고 산업 경쟁력 회복과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근본 대책까지 마련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인공지능(AI) 기본법 등 무쟁점 법안을 넘어 보조금 지원, 주 52시간 규제 적용 예외 등을 골자로 한 반도체특별법도 조속히 통과되도록 정치권을 더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석유화학 등 위기업종 구조조정도 실기하지 않는 게 절실하다. 추가경정예산도 민생 지원과 함께 AI 등 미래 먹거리 대비를 위한 투자 등을 포함해 과감하게, 빨리 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정치권, 특히 정권 교체를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민주당이 설령 재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체력이 방전된 경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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