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진행된 '제11회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중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시아 최초 여성 문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아닌 개그맨 출신 작가 고명환(52)이었다. 한강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고 작가에 대해 "무슨 책을 냈냐"는 궁금증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독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고 작가는 이미 재밌고 실용적인 책을 쓰는 작가로 인지도가 쌓여 있다. 특히 올해 출간된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는 고전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5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지난달 기준 10만부가 팔렸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후 쏟아지는 강연 요청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고 작가를 만났다. 메밀국수 전문점과 갈빗집 등 네 군데 매장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강연까지 다니는 그는 자신을 "개그맨이자 요식업 사업가이며 글을 쓰고 강연도 하는 고명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중 '업(業)'으로 삼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작가이자 강사다. 지금 생각은 그렇다"고 정체성을 전했다.
고 작가는 1994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1997년 MBC 공채 8기 개그맨으로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동료 개그맨 문천식과 함께한 '와룡봉추'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5년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인생이 달라졌다는 게 고 작가의 설명이었다.
교통사고 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던 고 작가는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면서 20년간 3000권이 넘는 책을 독파했다고 했다. 신간도 꾸준히 사 모으며 꾸준히 애독서를 업데이트한다는 고 작가는 서재의 책상 옆에 300권의 책만 따로 놓아놓으며 '나만의 무기고'를 만든다고. 그에게 "어떤 책이 가장 도움이 됐냐"고 묻자, "전 그런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그 책만 읽으려고 하냐"고 꼬집어 웃음을 자아냈다.
"빨리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건 없습니다. 제가 책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그건 저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영감이 되지만 상대는 그걸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다만 고전은 오래돼서 고전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사라질 책은 다 사라지고 우리 선조들이 '내 삶에 적용했더니 도움이 되더라'하는 것들만 살아 남은 거예요. 모범 답안, 족집게 과외인 셈이죠. 어떤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면, 너도나도 다 아는 그 책을 읽으면 됩니다."
고 작가는 책을 쓰는 것 외에 매일 아침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긍정 확언'을 하는 콘텐츠로도 많은 사람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매년 찾아오던 우울증을 떨쳐 버리기 위해 긍정 확언을 시작했다"는 고 작가는 1000일 넘게 매일 아침 콘텐츠를 올리며 소통해 오고 있다. 콘텐츠를 관통하는 소재 역시 '고전'이다.
다만 독서 방법에 대해서는 "무작정 읽지 말라"면서 고 작가가 수년간 쌓아온 방법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고 작가는 "책에서 무작정 배우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고민,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대한 질문을 갖고 읽어야 한다"며 "행복이면 행복, 자유면 자유, 매출이면 매출, 이런 질문을 갖고 '노인과 바다', '데미안'을 읽으면 저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제 관심사에 따라 '나만의 무기고'를 3개 파트로 나눴는데요. 하나는 작정하고 '돈을 벌겠다'하는 경제서.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책. 나머지는 '이걸 넣을까 말까' 하는 책들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 때문에 걱정이 되고, 경제서를 보고요. 그러다 본질이 흔들리고 삶이 갑갑할 땐 두 번째 책을 꺼내 보는 거죠. 이런 자신만의 무기고를 만들어서 몇십권만 채워도 든든해요. 멘토를 찾아간다고 하잖아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다독을 하고, 자신만의 자산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다. 식당에 쓰는 육수 공장을 운영할 정도로 가게도 규모를 키우고, 자리를 잡으면서 고 작가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가게에 사장이 늘 붙어 있진 않는다"며 웃는 고 작가는 "사람들이 저의 일과를 궁금해하는데, 저는 매일매일 그때그때 다르다"며 "어디에 있던 오전 5시에 일어나 '긍정 확언'을 하고, 다시 자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가게를 가거나, 강연이나 스케줄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는 1년에 3개월 정도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경남 통영 욕지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욕지도에 갈 때에도 "저의 무기고에 있는 책들을 싸 들고 간다"며 "어디에 가든 책을 읽는다. 그게 제가 변함없이 하는 생활 루틴"이라고 소개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올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긍정 확언'을 했다. 삶의 위기의 순간, 새로운 도전과 실천으로 늘 돌파구를 찾아왔던 고 작가였다. 그에게 이에 대한 원동력을 묻자 "제대로 바닥을 찍으면 자기도 모르는 생존 능력이 생긴다"면서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제가 재수할 때 우리 집에 있는 빚을 다 갚으니 잔고가 0이었어요. 그때 어머니 지인이 무상으로 변두리 구석에 있는 가게 자리를 빌려주셨어요. 거기에 페인트를 칠할 때, 우리 가족의 잔고는 0원이었는데 상쾌했어요. '이제 플러스만 되면 된다'는 거죠.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바닥을 찍으면 안 보이던 게 보여요."
고 작가는 조만간 신간 집필을 위해 다시 욕지도로 떠난다. 신간에 대한 계획을 묻자 "여러 아이디어가 있고, 여러 권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다"고 말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특히 고 작가는 인생의 후반전을 응원한다는 취지의 책을 내년 출판을 목표로 준비한다고 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을 솔직하게 전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글쓰기를 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울림과 깨달음을 줄 지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처음에 글을 쓸 땐 의도가 다분했어요. 제목부터 '돈을 벌자' 이런 목적이 보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이번에는 그런 의도 없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제가 먼저 겪었던,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만 있었어요. 주변에서는 '제목도 너무 길다', '검색이 어렵다'고 했지만, 이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리고, 상도 받았어요. 5개국 수출도 하고요. 다시 깨닫게 됐어요. 내가 잘되려면 남을 위해야 한다고요. 그런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