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정국 혼란을 틈타 음모론이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여야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지라시(사설정보지)에나 등장할 음모론에 힘을 실으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 좌우 양극단의 강성 지지층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서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생화학 테러 음모까지 제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비상계엄 사태 관련 현안질의에 유튜브 방송인 김어준 씨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사살하라는 계획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정 장소에 북한 군복을 매립하고, 일정 시점에 군복을 발견한 것처럼 꾸며 (한 대표 사살을) 북한 소행으로 발표하려고 했다”고도 했다. 계엄 이후 혼란한 상황을 북한의 소행으로 꾸며 전쟁을 촉발하려 했다는 것이다.김씨는 또 “생화학 테러에 대한 제보도 받았다”며 “미군 몇 명을 사살해 미국의 북한 폭격을 유도한다(는 계획도 있었다)”는 음모론도 제기했다. 이 같은 내용의 출처에 관해서는 “제보자의 신원을 밝힐 수 없다”며 “출처를 일부 밝히자면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만 덧붙였다.
정부와 군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 군복을 발견하고, 미군이 사살됐다고 북한 소행이라고 믿을 만큼 미국과 국제사회가 허술하다는 거냐”며 “생화학 테러를 할 생화학 무기 자체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극히 일부에게만 공유해 미국도 파악하지 못한 계엄 관련 민감한 내용을 김씨에게 제보할 수 있는 우방국 대사관은 없을 것”이라고 신빙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김씨의 발언에 근거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 등은) 충분히 그럴 만한 집단”이라고 말했으며, 김병주 의원도 “여러 제보가 접수됐다”고 했다.
○“DJ 때부터 부정 선거했다”는 보수
보수 진영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와 전자개표기 조작을 통해 광범위한 선거 조작이 이뤄졌다’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이 “(선관위) 시스템 보안 회사도 작은 규모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 이후 더욱 불이 붙었다. 13일에는 올 4월 총선에 여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SNS에 ‘탄핵이 된다손 치더라도 선관위는 꼭 털어야 할 듯’이라는 글을 올렸다.음모론의 내용은 불법 대북 송금 혐의로 재판을 받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선관위 서버를 관리하는 쌍방울 자회사를 통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의 공작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주문해 제작된 부정 전자개표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따라붙는다.
선관위 서버를 2023년까지 관리한 비투엔이 올 3분기 기준 쌍방울과 계열사가 29.91%로 최대주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서버 관리 업체가 데이터를 조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IT업계 관계자는 “2013년 관련 법 개정으로 대기업 계열사의 공공기관 서버 관리 수주가 금지돼 비투엔 같은 중소기업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선관위 관계자도 “비투엔은 관련 법률에 따라 선정돼 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만 했다”며 “서버와 시스템 운영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수행했다”고 반박했다.
노경목/김동현/배성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