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영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명작들이 꽁꽁 얼어붙은 극장가를 채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비상계엄, 탄핵 여파로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이 늘면서 최근 개봉한 신작들마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작품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씨네필'(영화 광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작품들이 틈새시장 저격에 나섰다.
CGV는 '명작을 어필하다, CGV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최근 예전의 명작을 다시 찾아보는 관객이 늘어나고, 재개봉작에 대한 호응도 높아짐에 따라 이에 부응하고자 이같은 기획을 마련했다는 것이 CGV의 설명이다.
매월 선정된 1편의 명작을 전국 CGV에서 약 2~3주간 상영하는데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달 명작 '캐롤'(2016)을 선보였다. 지난 11일부터는 SF 명작 '매트릭스'를 극장에 걸었다.
‘매트릭스’(1999)는 1999년 개봉한 작품으로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시대 배경으로 인류의 뇌를 지배하는 AI 컴퓨터 프로그램이자 가상현실 공간인 매트릭스에서 벌어지는 AI와 인간의 대결을 그렸다.
더 워쇼스키스(릴리, 라나 워쇼스키 감독) 공동 연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로 현실과 가상 세계가 뒤섞인 매혹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이번에 개봉하는 '매트릭스'는 4K로 만날 수 있어 더욱 생생한 화질과 음향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IMAX 마스터피스 기획전'을 통해서는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 ‘듄’(2021), ‘듄: 파트2’(2024)를 17일까지 선보인다.
'인터스텔라'는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황폐해진 지구의 인구를 위해 우주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그린 전쟁 영화다. 두 편의 영화 모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으로 IMAX관 필수 관람 영화로 손꼽힌다.
'듄', '듄: 파트2'는 프랭크 허버트의 SF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전 우주의 왕좌에 오를 운명으로 태어난 전설의 메시아 폴의 여정을 담았다.
이 시리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제작 단계부터 IMAX 상영 최적화를 고려해 촬영한 작품으로 IMAX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시네마는 개봉 20주년을 맞은 '이터널 선샤인'(2004)을 전 세계 최초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오는 18일 재개봉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해외를 비롯하여 국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개봉 후 20주년이 지난 지금도 로맨스 영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워갈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두 남녀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멜로로 기억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두 주인공이 얼어버린 강 위에 누워 별자리를 바라보는 장면은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겨울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으로 꼽히며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잔상을 남긴 작품이다.
"오겐키데스카(잘 지내나요)"라는 명대사로 겨울 로맨스의 대표 격인 '러브레터'(1995)도 내년 1월 1일 재개봉된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중학교 동창의 연인에게서 갑작스레 편지 한 통을 받게 된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가 과거와 마주하며 겪는 일을 담았다.
후지이가 설원에 서서 "오겐키데스카, 와타시와 겐키데스"(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재개봉 판은 1999년 한국 개봉 당시 사용됐던 '세로 자막'을 입혀 향수를 자극한다. 최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주연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아키라'(1991), '공각기동대'(2002),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2007), '더 폴'(2006) 감독판, '밀레니엄 맘보'(2003) 등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개봉 영화 열풍이 올해 처음은 아니지만, 특별 상영관 활성화로 고정 수요층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극장에 걸린 '비긴 어게인'(2004)이 재개봉으로 관객 수 2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특히 요즘의 재개봉작들은 이전에 해당 영화를 본 적 없는 젊은 관객도 많다. 이들은 부모나 미디어를 통해 '명작'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홍보마케팅도 수월한 편이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 담당은 "일부 젊은 관객들은 재개봉 작품을 신작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며 "한 번도 극장에서 보지 못한, 그러나 입소문이 난 명작을 공개하는 것은 관객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취지로 재개봉작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관객들은 주위 평가를 들으며 '괜찮다'고 하는 영화들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고객 트렌드도 감안한 셈"이라며 "극장에서 보면 가장 좋을 만한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설명했다.
내년도 한국 영화는 개봉 라인업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 창고영화를 다 털고 나니 출격이 가능한 영화들은 손에 꼽는다. 2025년 개봉 목표인 순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 영화는 10여편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를 받지 못해 한국 영화들이 위축되고 있다. 내년 라인업만 봐도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한국 영화가 뒷받침되어야 영화 산업도 성장할 수 있는데 앞으로 관객 수가 더 적어질 우려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극장은 재개봉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들이 많이 오도록 궁여지책을 세운 것"이라며 "4DX와 같이 다양한 기술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선보이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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