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탄핵 부결 관련 후폭풍이 수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현장에 타격을 미치고 있다. 각 기업 대표와 해외 영업 담당자들은 거래처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경남 창원 소재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 A사 대표는 10일 전화통화에서 “글로벌 고객사들의 문의가 전날까지 쇄도해 특히 해외영업 파트 직원들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글로벌 고객들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걱정하는 동시에 ‘생산에는 차질이 없는 지’ 매일 전화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영업 담당자들은 해외 나가기 전에 계엄, 탄핵 등 정치 용어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지 공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고객 중에서도 특히 유럽 대륙 국가들의 반응이 예민한 편이었다. 렌즈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B사 대표는 통화에서 “영국 고객은 계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사전에 나온대로 설명하지 말고 글로벌 언어로 풀어서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요구해 난감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독일 등 유럽 쪽에서는 안부를 묻는다든지 한국 상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문의가 계속 오는데 이스라엘이나 중동에선 별다른 연락이 없다”고 했다. 중견 제지회사 관계자도 “유럽 거래처에서 하도 불안해해서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 회사 재무상태까지 세세하게 브리핑해줬다”고 전했다.
해외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친 회사도 있다. 로봇 제조업체 C사관계자는 “해외 대형 투자사와 IR(투자자 대상 기업 설명회)이 계속 잡혀있는데 만날 때마다 한국 상황은 괜찮은 지, 우리 회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건 아닌지 안심시키는데 에너지를 쏟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글로벌 이슈가 될 대형 호재가 나왔는데 이를 정치가 다 망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2차전지 소재 전문기업 D사도 "원자재 수급엔 문제 없는 거냐", "배는 제때 뜰 수 있는 건가", "공장은 문제 없이 가동되는 것이냐" 등 고객사의 온갖 질문에 응대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 D사 관계자는 "중국 고객사와 예정된 저녁식사 미팅 중에 '대통령이 마음대로 계엄 선포하는 나라가 어딨냐', '중국도 그렇게 안 한다'는 비아냥을 듣고 너무 창피했다"며 "공산당 국가보다 뒤처지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 침통했다"고 전했다.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대표들은 직접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식품 제조기업 E사 대표는 “해외법인장들이 국내 들어와야 하는 일이 지난주에 있었는데 국내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들어오기를 꺼려해서 ‘한국 정말 괜찮으니 안심하고 와도 된다’고 설득했다”며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지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사정이 더 안 좋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황 전망이 나빠진 데다 계엄 후폭풍까지 겹쳐서다. 반도체 소재 제조업체 F사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이라며 "안 그래도 3분기 실적이 저조했는데 지금은 회사의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해외 고객사들의 반응이 나빠 걱정"이라고 했다.
최형창/민지혜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