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인 NM(New Marriage) 소속 직원 노인지는 네 번째 계약 결혼을 마치고 다섯 번째 결혼 상대인 한정원을 만나면서 이상한 결혼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간제 결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 ‘트렁크’의 이야기다. 원래 혼인관계의 시작과 끝은 법률적으로는 결혼와 이혼이다. 혼인을 근로계약관계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도 특이하지만, 여기에 노동법 영역에서 사용되는 ‘기간제’라는 용어를 붙인 것도 색다르다.
그러나 드라마 속 구성을 노동법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간제 결혼’ 개념에 의문이 있다. 기간제 근로계약은 단지 기간의 정함이 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양 당사자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인데, 트렁크에서는 배우자를 찾는 고객이 결혼 매칭업체와 계약을 하고 업체 소속의 직원이 계약결혼을 하는 형태로, 파견근로의 구조이다. 따라서 노동법적 관점에서 보면 계약구조에 비추어 기간제 결혼이라기 보다는 파견직 결혼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법적으로 기간제와 파견은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비정규직의 대표적인 형태로 분류되고 있고, 법리적으로 유사한 점도 많이 있다. 기간제와 파견을 비교해서 살펴본다.
첫째, 드라마에서도 주목한 ‘기간’ 부분으로 기간제 근로계약과 파견 근로계약 모두 최대 2년이다. 다만, 기간제 근로계약에서는 기간제법 제4조 및 시행령 제3조에 따라 2년을 초과할 수 있는 예외사유 및 직종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있는 반면(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위한 계약, 고령, 전문직, 고등교육법상 조교 등), 파견에 있어서는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에 한하여 2년을 초과할 수 있다.
관련하여 기간제법 및 시행령은 고등교육법상 조교를 2년을 초과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립대학교의 비학생 조교가 위 규정에서 말하는 조교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건에서 제1심은 비학생 조교는 주로 학사 운영에 관한 행정적인 업무를 하므로 기간제법상 예외인 조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나, 제2심 및 대법원은 비학생 조교의 경우에도 고등교육법이 정한 조교의 업무인 교육, 연구 및 학사에 관한 보조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판단하여 기간제법상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22. 2. 16. 선고 2021나2008239 판결,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
한편, 파견근로 2년을 마친 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되는 경우도 있는데, 각각을 규율하는 법을 준수하였다면 파견근로 이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허용 대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간제 근로계약이 금지되는 영역은 찾기 어렵다. 반면에 파견의 경우 직접생산공정업무는 금지되고, 파견법 시행령에 따라 매우 한정된 영역의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이 허용된다. 이에 파견 대상 업무가 법상 파견이 허용된 업무인지 아닌지 다툼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고 소위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분쟁, 즉 도급인지 파견인지가 쟁점으로 다루어지는 분쟁에서 파견으로 판단되면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을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파견이 되는 경우가 있다.
셋째, 차별 문제인데 매우 유사하다.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은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파견법 제21조 제1항 역시 파견근로자라는 이유로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비교대상이 되는데, 판례는 실제 수행한 업무와 주된 업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1두5391 판결). 최근 기간제 영역에서 차별 여부를 판단하려면 먼저 비교대상 근로자가 누구인지가 정해져야 하는데, 대법원은 이 단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보면 차별시정제도를 통한 근로자 구제가 미흡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노동위원회가 신청인이 주장한 비교 대상 근로자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직권으로 비교대상 근로자를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19두53952 판결).
넷째, 각각의 특유한 문제로서 기간제에서의 갱신기대권, 파견에서 직고용시 근로조건에 관한 문제가 있다. 기간제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기간이 만료되면 근로계약은 자동적으로 종료되는 것이 원칙인데, 판례 법리에 따라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 즉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있다. 갱신기대권은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의 규정,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된다(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5두59907 판결). 그리고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면 갱신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계속 갱신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파견법을 위반한 경우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고, 이때 직고용된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동종 또는 유사한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맞춰야 하고, 없는 경우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아야 한다(파견법 제6조의 2). 관련하여 최근 법원은 동종 또는 유사한 근로자가 없는 경우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적으로 정해야 하는데, 자치적으로 정하지 못할 경우 법원이 개별적인 사안에서 근로의 내용과 가치, 근로조건 체계 등을 고려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고 하여, 동종 또는 유사한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도 하회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상당히 유연하게 해석하는 판결을 선고 한 바 있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 판결).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