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교 35주년을 맞은 폴란드에는 한국의 ‘한(恨)’과 비슷한 ‘잘(al)’의 정서가 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며 쌓은 감정으로 슬픔과 체념 집념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잘’은 폴란드 음악에도 깊이 녹아들었다. 폴란드 대표 음악가 쇼팽의 ‘마주르카’ 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애수가 그렇다.
다음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스웨덴·폴란드계 피아니스트 피터 야블론스키(사진)의 리사이틀 ‘폴란드의 밤’은 ‘잘’의 정서를 진하게 느껴볼 기회다. 쇼팽 이후 폴란드 음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들려줄 작품은 19~20세기 폴란드 작곡가 그라지나 바체비치(1909~1969), 카롤 시마노프스키(1882~1937)의 피아노곡들이다. 로널드 스티븐슨(1928~2015)이 재해석한 폴란드 작곡가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의 작품도 선보인다. 야블론스키는 시마노프스키의 글로벌 홍보대사와 바체비치의 레지던시로 활동한 이 분야 스페셜리스트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반은 폴란드인이라 폴란드 음악과 문화가 내 고향같이 느껴진다”며 “이번에 들려줄 작품들은 중요한 작품으로 더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블론스키는 시마노프스키를 ‘폴란드 음악의 거인’이라고 표현했다. “시마노프스키는 소리로 그림을 그려내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페달링, 사운드 연출, 다이내믹 등 놀라운 점이 많아요.”
바체비치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여성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야블론스키는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바체비치의 두 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피아노 레퍼토리 중 손꼽히는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그가 음반으로도 선보인 스티븐슨의 피아노 작품도 들려준다. 쇼팽의 전통을 계승한 작곡가 파데레프스키의 오페라 ‘만루(Manru)’를 토대로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야블론스키는 열일곱 살에 클래식 레이블 데카와 계약하며 스타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다. 30여 년간 미국의 근·현대 작곡가와 폴란드 현대 음악가들, 아르보 패르트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섭렵했다.
한국 관객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쇼팽의 마주르카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듯 예술은 문화·언어 장벽을 초월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관객들이 폴란드 작곡가의 음악이 지닌 서정성, 힘, 리듬감 등 많은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라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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