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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2010년대 초반 희토류, 희귀금속으로 일본을 협박했을 때 위기감을 느낀 것은 서방국뿐만이 아니었다. 러시아도 부랴부랴 점검해보니 자국 첨단 전투기와 미사일, 촉매 등에 쓰이는 디프로슘과 이트륨 등을 90% 넘게 중국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크렘린궁은 2013년부터 각종 연구개발(R&D)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통해 희토류 광산과 기반 시설 개발, 농축 기술 연구에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발 지연되는 시베리아 '톰토르' 광산
지난 2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열린 회의에서 데니스 만투로프 부총리 등에게 시베리아 야쿠티아주(사하 공화국) 북부 희토류 매장지 개발 기업이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수년 전에 이 광산을 인수한 업체가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며 "투자를 늘리거나 국가를 포함한 제3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인이 일으킨 전쟁에 따른 미국과 유럽의 제재로, 서방은 물론 중국 금융기관이나 국영 광산기업들조차도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시베리아 북부 톰토르 광산은 첨단 군수 제품과 휴대폰,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희귀한 금속이 대량으로 매장된 지역이다. 1977년 발견된 이곳은 니오븀, 란타넘, 네오디뮴, 티타늄 등 20종 이상의 희토류와 희귀금속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 광산을 개발해 중국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계획이었다. 광산이나 정제시설 건립·운영에 장애가 되는 환경오염 우려나 인권침해 등의 문제는 러시아도 중국 못지 않게 신속하고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어 기대도 컸다.
푸틴이 지목해 비판한 '쓰리아크마이닝'이란 업체는 사업가 알렉산더 네시스가 개인회사를 통해 지분 75%를 갖고 있다. 네시스의 관계사인 금·은광 개발업체인 폴리메탈도 9.1%의 지분을 소유했다. 폴리메탈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폴리메탈은 지난 6월 톰토르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고 설명했다. 폴리메탈은 프로젝트 개발이 보류된 후인 2023년 투자금을 모두 손실로 처리하고 2400만 달러를 상각했다.
이르쿠츠크 지역의 자시키스코예 매장지 등 다른 러시아 희토류 프로젝트도 대부분 자금 부족으로 답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베리아 지역은 도로와 전기 등 인프라 건설에만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S&P글로벌은 "소량의 희토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천문학적 양의 원석과 정제시설 위험으로 희토류 프로젝트는 구리나 철광석보다 더 리스크가 크다"며 "현재 수준의 기술을 고려하면 프로젝트의 자본 집약도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희토류 개발에 15억달러 투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2년 전 러시아는 희토류 광물 개발에 15억달러를 투자해 2030년까지 중국에 이어 글로벌 2위 희토류 생산국이 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 가운데 러시아의 점유율을 현재 1.3%에서 1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으나 전쟁으로 계획은 산산이 조각났다. 러시아는 1200만t의 희소 광물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10%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알렉세이 베스프로즈바니흐 러시아 산업통상부 차관은 2020년 8월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지원 대상 목록에 포함된 프로젝트 투자자들에게 광산 세금 감면과 저렴한 대출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톰토르 매장지 개발을 포함한 11개 프로젝트를 통해 2025년까지 희토류 원소 자급자족을 달성하고, 2026년에는 수출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당초 목표는 2024년까지 희토류 농축물 생산량을 연간 7000t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비료 생산기업 아크론(Acron)이 인회석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등의 공정을 개발해 세륨, 란탄, 네오디뮴을 생산하는 등 일부 성과도 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러시아의 2019년 생산량을 2700t 정도로 추정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생산을 위해선 광산 개발이 불가피하다. 중국의 지난해 희토류 생산량은 24만t에 달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