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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중국 클린테크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기술 이전을 요구하기로 했다. 선도형 경제로 과거 중국의 추격을 받아온 유럽이 이제는 역으로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공급망을 따라잡기 위해 나섰다.
미국에서는 초당적 자문 기구가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32개 권고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범용인공지능(AGI)을 개발하기 위해선 제2 ‘맨해튼 프로젝트’(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 수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해당 보고서의 골자다.
○보조금 줄 테니 기술 달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고위 관계자 두 명의 발언을 인용해 “EU 당국이 오는 12월 전기자동차 배터리 개발을 위한 10억유로 규모 보조금을 신청받을 때 중국 기업에 ‘유럽에 공장을 설립하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한다’는 새로운 조건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EU 보조금을 대가로 중국 회사가 유럽 기업에 지식재산권(IP)을 이전하도록 강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시범 정책은 다른 EU 보조금 제도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FT는 “EU의 셈법은 기존에 중국이 써오던 정책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는 유럽 내 기업들이 오염이 심한 대신 저렴한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 때문에 피해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전했다. 중국은 과거 외국 기업에 자국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IP 공유를 압박하는 체제를 통해 200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뤄왔다.
특히 최근엔 중국이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클린테크 분야를 선도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자국 클린테크 공급망을 육성하는 데 3700억달러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나온 EU의 ‘기술 이전 압박’ 전망은 최근 EU가 중국에 취하는 강경책의 연장선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일반 관세 10%에 더해 최고 35%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9월에는 역내에서 수소 보조금을 신청하는 회사에 수소 생산 설비(전해조) 부품의 25%까지만 중국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이는 보호무역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 무역 장벽이 더 강화될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2기에는 EU 등 동맹국도 중국 상품이나 투자를 차단하도록 더 큰 압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 수출품에 60%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길 경우 중국이 수출품의 목적지를 미국에서 EU로 틀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U가 중국산 수입품의 홍수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美 “맨해튼 프로젝트급 대책 필요”
미국에서는 같은 날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32개 권고안이 포함된 연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해당 권고안에는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인력을 확충해 대중 수출 통제 효과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해 중국의 첨단기술 개발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USCC 위원인 제이컵 헬버그 팰런티어 수석고문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급격한 기술 변화의 시기를 가장 먼저 이용하는 국가가 글로벌 힘의 균형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며 “AGI 개발을 위해 폭주하는 중국을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의 기술과 서비스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도 권고했다. 대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원격 관리가 가능한 에너지 기반 시설 제품을 꼽았다. 아울러 의회가 행정부에 중국산 소프트웨어(SW) 사용을 금지한 ‘커넥티드 차량’ 규정을 산업용 기계, 사물인터넷(IoT) 등 다른 커넥티드 기기로 확대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USCC는 800달러 미만 중국산 제품에 대한 면세 한도 규정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김리안 기자/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