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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만 다섯 끼…조선판 '파인다이닝' 궁중음식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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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암탉을 죄다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어 느르미(찌거나 구운 재료에 즙을 부은 음식)처럼 하고 간장, 기름거리한 깨소금, 밀가루 조금, 후추, 파 넣고 재웠다가 익게 구어 즙 맛 나게 하여 쓰라"

순조비 순원왕후(1789~1857)를 모시던 상궁 최혜영이 한글로 쓴 '닭찜법'의 일부다. 재료의 손질부터 조리기법, 양념에 대한 내용이 현대의 요리책 못지않게 상세하다. 오늘날 한식의 원천이자 '파인다이닝' 격인 궁중요리는 이처럼 체계적으로 유지·전승돼왔다.



조선 왕실의 궁중음식 문화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렸다. 20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에선 재료 공수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 기록물과 그림, 그릇, 조리도구, 소반 등 200여점의 유물과 당시 수라상을 재현한 모형을 아우른 전시다.

임금의 건강은 나라의 안위와 직결되는 중대사였다. 궁궐 내 식사를 책임지는 기관인 '사옹원'을 따로 두고 관리한 이유다. 요리를 전담하는 숙수를 비롯해 임금의 식단을 관리하는 내의원, 식자재를 검수하는 내시부가 두루 참여했다. 상궁과 나인들도 간단한 음식을 만들거나 이를 담아 옮기는 등 손을 보탰다.



전시는 요리의 모든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첫 단추다. 강원도 고성군과 통천군에서 소금에 절인 연어를, 제주에서 특산품인 감귤을 각각 진상하는 과정이 기록과 그림 자료에서 확인된다.

부엌처럼 꾸며진 제1전시장 가운데 공간엔 수라간에서 활용한 조리기구를 전시했다. 개회기에 서양에서 들여온 요리 지식을 결합한 거품기가 특히 눈에 띈다. 요리를 은그릇이나 백자 등 정갈한 식기에 담고, 임금이 사용하는 붉은 주칠 상에 담은 뒤 가마에 태워서 실어 나르면 한 끼 완성이다.

조선의 왕은 하루 평균 다섯 끼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왕실의 요리사들은 기본적으로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고, 사이사이 면이나 죽 등 간식을 수시로 올렸다. 구체적인 반찬의 가짓수를 나열한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고 없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화성 행차를 나섰을 당시의 기록 등 몇몇 사료를 통해 7~12가지 반찬을 마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진귀한 주안상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의 맛을 더한다.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이자 그의 41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잔칫상이 그중 하나다. 이날 잔치에서 고종은 9번의 술잔과 9번의 안주상을 받았는데, 총동원된 요리는 63가지에 이른다. 궁중음식문화재단에서 이를 재현한 모형을 본 관객은 군침을 넘길 만 하겠다.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은 '현직 임금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궁중음식도 함께 다뤘다는 데 있다. 죽은 이를 위한 음식이 그중 하나다. 왕실의 가장 큰 사당인 종묘에선 조상을 신으로 여기고, 산 사람은 먹을 수 없는 날고기를 제물로 바쳤다. 이와 달리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조상한테는 생전 먹던 그대로 아침저녁 식사를 올렸다.



임금이 홀로 모든 음식을 탐하지 않은 것도 궁중음식의 미덕이다. 나라 사정이 좋지 않으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며 '감선'을 행하고, 경사가 생길 땐 백성한테 '사찬'이란 이름의 음식을 하사했다. 잔칫상 준비에 애쓴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임금은 호위병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호궤'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내리고, 잔치 준비에 고생한 병졸과 악단, 나인들과도 잔칫상을 나눴다.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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