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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컴퓨터를 훔쳐갔다"…범인 찾아 나선 화가한테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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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속 한 장면 같다. 황량한 사막과 버러진 밀밭, 공장 폐수로 뒤덮인 사해(死海) 등 장애물이 표시된 거대한 지도가 길잡이다. 각 지역을 확대해 묘사한 유화와 파스텔화가 관람 동선에 따라 배치됐다. 관객은 작품에 적힌 '규칙'을 따르거나,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퀘스트'를 수행하며 세계관에 빠져든다.



뉴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방앤리의 개인전 '카나리아 배포: 모든 거짓말에 대한 증명'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렸다. 방앤리는 방자영(47)·이윤준(53)으로 구성된 2인조 작가 그룹이다. 환경문제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 이면에 존재하는 모순에 대한 고민으로 뭉친 이들은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20여년간 합을 맞춰왔다.

방앤리는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설치작업으로 국내외에 알려졌다. 대학생 시절인 1997년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함께 유학하며 인연을 키웠다. 2006년 듀오를 결성한 뒤 관객참여형 무대, 기술 융합 프로젝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독일의 복합예술센터 ZKM를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중국 등지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제목의 '카나리아 배포'는 정식 출시 전인 소프트웨어를 일부 사용자한테 미리 공개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뜻한다. 방앤리가 시험해보고자 했던 건 미술 전시회와 '워킹 시뮬레이터' 형식의 결합이다. 워킹 시뮬레이터는 플레이어의 '걷기와 보기'라는 행동을 중심으로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파헤치는 게임 장르다. 전시장의 모든 회화와 설치, 영상 작업이 하나의 줄거리를 구성한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는 방앤리가 지난 2008년 캐나다 여행 중 겪었던 사건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함께 협업하던 한 미국인 작가가 방자영 작가의 컴퓨터를 훔쳐 달아난 실제 사건에서 비롯한 여정이었다. 컴퓨터를 회수하기 위해 나선 이윤준 작가가 캐나다 위니펙의 말버러 호텔과 브로드웨이 애비뉴, 대평원, 사막 지대 등을 여행한 기록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모든 거짓말에 대한 증명'이란 전시명이 지목하는 '거짓말'은 크게 두 가지다. 믿었던 미국인 동료의 배신이라는 개인적인 사건이 한 가지, 작가가 캐나다에서 목도한 환경문제가 나머지다. 이 밖에도 실제 사건에 대한 기억과 허구적 상상 사이의 혼란, 미디어와 기술 발달의 그림자 등 질문거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는 주제와 별개로, 작품 하나하나의 미적 요소도 볼 만하다. 그동안 미디어 설치작업을 주로 선보여온 방앤리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장 2층의 '철거되기 전 유나이터드 그레인 그로워즈 곡물창고'(2021)가 백미다. 텅 빈 평원에 금방이라도 드리울 것 같은 폭풍우가 이때 작가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전시는 12월 2일까지.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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