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송, 무조건 해야 한다는 직감이 왔다.”
한국피자헛 가맹점주들이 본사(가맹본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점주 측을 대리한 현민석 법무법인 와이케이(YK) 변호사(사법연수원 39기)는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인석 YK 대표변호사(27기)가 넘겨준 이 소송 1심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두고 “세상에 없던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원고 측을 대리해 소송에서 이기면)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를 뒤집어놓을 사건이라는 예감이 들었다”며 “(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2007년 사법시험 합격 후 군법무관을 거쳐 2013년부터 줄곧 법무법인 광장에서 몸담아 온 현 변호사는 올해 YK로 적을 옮겼다.
지난 9월 11일 서울고등법원 제19-3민사부(손철우 부장판사)는 한국피자헛 가맹점주 94명이 본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2심에서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본사가 점주와 사전 합의 없이 걷어 들인 차액가맹금은 ‘부당이득’이므로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인용 금액은 1심 약 75억원에서 약 210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현 변호사는 “(2022년 6월) 1심 이후 2심 판결이 나기 전까지 사이 기간에도 점주들이 차액가맹금을 계속 납부한 점을 반영해 청구 취지를 확장했다”며 인용 금액이 늘어난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일부 원고를 제외하고 선고일까지의 추가 인용 금액을 모두 인정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차액가맹금의 법적 지위에 있었다. 피고 측은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에 따라 차액가맹금은 마진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가맹사업자 간 계약에선 원가와 마진을 합한 총액에 대한 합의만 있을 뿐, 마진에 대한 별도 합의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가맹사업법은 차액가맹금에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했고, 이에 따라 별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상 가맹금은 금전의 형태로 지급되지만, 이에 대한 대가로 가맹본부가 제공하는 급부는 가맹점운영권, 영업 활동에 대한 지원·교육, 부동산, 물품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각 급부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다. 현 변호사는 “차액가맹금 수취 행위 자체가 적법이냐, 위법이냐를 따지는 공정거래법상 논리보다는 수취한 차액가맹금이 유효냐, 무효냐를 따지는 민법적 논리에 무게를 두고 변론 구조를 짰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재판부는 “올해 7월 3일부터 시행된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차액가맹금이 있는 경우 그에 관한 합의가 가맹계약서의 필수 기재 사항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적시했다. 기존 가맹계약서에 차액가맹금을 규정했다는 피고 측 주장도 기각했다.
본사에 유리한 쪽으로 형성돼 있었던 프랜차이즈 업계의 가맹계약 관행에 법원이 철퇴를 가한 셈이다. 점주들은 본사가 재룟값을 아무리 비싸게 책정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 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본사가 극단적으로 100%의 마진을 붙여 차액가맹금을 떼 가더라도 점주가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던 유통업계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외식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90%가량이 점주들로부터 차액가맹금을 수취하고 있다. 영업이익 의존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국내 유통업계의 특수한 관행이다. 현 변호사는 “본사들은 자사 구매력의 원천이 가맹점에서 나온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는데, 점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며 가맹점주들이 일방적으로 착취당해 온 현실을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사업법상 정보공개서에 차액가맹금 관련 내용을 기재할 것을 의무화한 것은 2019년부터다. 재판부는 2021년 11월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례를 들어 정확한 차액가맹금 산정을 위한 원·부재료 구입 가격 관련 자료를 내라고 했지만, 한국피자헛은 “문서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2019년 이전에 지급된 차액가맹금을 입증할 의무가 원고 측에 있었다.
원고 측 대리인들은 관련 자료 입수를 위해 한국피자헛 본사를 직접 찾았다. 현 변호사는 “문서가 너무 많고 복잡해 정리가 어렵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며 “안전모를 쓰지 않으면 (문서 보관) 창고 출입이 안 된다고 해서 근처 마트에서 안전모까지 구입했고, 품목 하나하나를 비교해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지급된 차액가맹금 전액이 부당이득으로 인정됐다.
현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PEF)가 프랜차이즈 시장에 뛰어들면서 이 업계에서 ‘상생 모델’이라는 것 자체가 더욱 불가능해졌다”며 “다수 은퇴자가 프랜차이즈 창업에 뛰어드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가맹본부의 차액가맹금 수령 관행은 요건을 더욱 엄격히 해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2심 판결을 계기로 외식업계 가맹점주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배스킨라빈스 가맹점주 400여 명, BHC치킨 가맹점주 300여 명 등을 포함한 1200여 명이 늦어도 이달 내에 본사(가맹본부)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