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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으로 남긴 유언, ‘이것’ 빠지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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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플래닝]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캠코더를 사용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녹화된 영상은 대개 주인공이 죽고 한참이 지난 후 발견되거나 전달된다. 마지막 인사는 사랑의 고백일 때도 있고 단순히 어머니 잘 모시고 가족끼리 싸우지 말고 잘 살라는 정도의 유훈이나 덕담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유산 분배를 선언해 둔다면 어떻게 될까.

유언자의 진의 왜곡 가능성 차단

또한 요즘은 누구나 동영상 촬영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유언자의 영상이 그 음성과 함께 녹화되는 경우가 많다. 유언자가 자신의 유언을 스스로 촬영하기도 하고, 병상에서 임종을 앞둔 유언자의 진술이 제3자에 의해 촬영되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들은 유언으로서 효력이 있을까.

유언은 내가 죽은 뒤 나의 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나의 뜻에 따라 가족 등 타인에게 넘겨주는 행위다. 유언을 하지 않더라도 상속은 이뤄지지만, 유산의 승계와 분배에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유언은 단순히 후손들에게 남기는 덕담이 아니라 나의 노후, 나의 사후를 스스로 설계하고 결정하는 행위다. 다시 말해 단순히 나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유산의 분배를 통해 내가 살면서 추구했던 가치, 후손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철학이 구현되도록 할 수 있다.

민법은 유언이 법적으로 효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방식과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유언이 갖추어야 할 격식이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은 위조, 변조 방지 목적 외에 타인의 부추김이나 강압에 의해 유언자의 진의가 왜곡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 민법이 정하는 유언의 방식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다섯 종류가 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서 전부를 직접 자신의 자필로 작성하는 방식이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자필증서의 내용과 형식에 따르되 유언자가 말로 하는 것을 녹음하는 것이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이 유언자가 말한 내용을 확인하고 직접 작성한 공정증서 형식의 유언이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다른 관여자 없이 작성한 문서를 밀봉한 뒤에 공증인에게 확인을 받는 방식의 유언이며, 구수증서는 질병 또는 급박한 사유가 있을 때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말하고 다른 이가 받아 적은 문서다.

민법이 허용하는 다섯 가지 유언의 방식 중에서, 스마트폰이나 캠코더와 같은 녹화 장치로 촬영된 영상은 서류가 필요한 나머지 네 가지의 유언에는 해당할 수 없고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만 인정될 여지가 있다.

유언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있어야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민법은 유언자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법에서 정한 방식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한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스스로 유언의 취지, 그리고 성명과 연월일을 말해야 하고, 반드시 증인이 참여해 자신의 성명과 유언자의 유언이 정확하다고 말해야 하며, 이것이 모두 녹음돼 있어야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자칫 녹음 파일이 지워질 수 있고 변조가 쉽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고, 유언자가 중병으로 서류를 작성하기 힘든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녹음 도구는 음향을 기록할 수 있으면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다. 음향과 영상이 함께 기록되는 녹화도 당연히 가능하다.

따라서 스마트폰으로 녹화한 유언자의 진술은 이와 같은 내용이 모두 빠짐없이 녹음돼 있다면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 인정받게 된다. 녹화 당시 유언자가 유언을 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스마트폰이나 캠코더 등을 이용한 유언 역시 증인의 참여 등 법에서 정한 녹음에 의한 유언의 방식을 빠짐없이 지켜야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히 혼자 상속의 의사를 녹화해서 남기는 방식으로는 유효한 유언이 될 수 없다.

최근 대법원에서 선고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A는 7명의 자녀를 두고 2019년경 사망했다. A는 사망하기 전 자신이 죽으면 그 소유의 부동산들을 장남과 차남에게만 나누어주고, 5명의 딸들에게는 장남이 각 2000만 원씩 주라는 내용의 말을 했고, 그 모습을 차남이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소지하고 있었다.

A와 차남은 이 동영상이 유언으로서 효력이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녹음에 의한 유언은 앞서 본 것처럼, 반드시 한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한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차남은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사람이어서 증인이 될 자격이 없고 그 밖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므로, 이와 같은 유언은 필요한 형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다.

스마트폰으로 남긴 유언의 한계


참고로 이 사례에서는 필요한 형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인 유언이 ‘사인증여 계약’으로서는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어졌다. 즉, 유언이 법적 방식에 맞지 않아 무효라고 할지라도, 그 유언의 내용에 자신이 사망하는 경우 특정한 재산을 누군가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받을 사람이 동의한 경우에는, 증여하는 사람(증여자)과 받는 사람(수증자) 사이에 사인증여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다.



A가 동영상 촬영 말미에 “그럼 됐나?”라고 말한 것을 증여에 대한 청약으로 보고, 차남이 그에 대해 명시적인 답변을 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입회하고 있었다는 것을 묵시적 승낙으로 보게 되면, A와 차남 둘 사이에서는 사인증여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의 “그럼 됐나?”라는 말은 혼잣말일 뿐 차남에게 청약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원고가 입회했다고 해 승낙한 것이 될 수도 없으며, 유독 차남에게 대해서만 효력을 인정하게 되면 자녀들 모두에게 재산을 배분하고자 하는 A의 뜻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머지 자녀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아서,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스마트폰이나 캠코더와 같은 녹음·녹화 장치를 이용해 유언자, 중병으로 임종을 앞둔 사람, 치매 등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나 말을 녹화하는 목적은 다양하다. 녹음에 의한 유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유언을 진행하면서 당시 유언자가 유언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증명하기 위해서, 또는 특정 재산에 대한 처분 행위나 신분 행위 당시 의사결정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보강 증거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견이나 상속, 재산 행위나 신분 행위의 유효성을 다투는 재판에 제출되는 영상은 변조 또는 편집의 가능성이 다른 영상에 비해 높다.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러한 장면을 촬영해 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거나, 향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방증한다. 그래서 그 원본의 존재 및 편집, 변조 여부에 대해 엄격한 심사가 이뤄진다.

다툼 방지하려면 공정증서 유언이 효과적

추후 유언의 유효 여부를 두고 상속인을 포함한 관련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든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 상태에 있다면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진행할 수 있다. 공증인이 유언에 관여하기 때문에 요건이 갖춰지지 않을 우려가 적어 나중에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을 뿐만 아니라, 증서 보관까지 공증인이 맡아주기 때문에 분실이나 위조 등의 위험이 없다는 것도 탁월한 장점이다.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나 법률 해석의 경향은 나의 삶과 재산은 물론이고 죽음까지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이 좋아서 선택했다면 법률이나 규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연명치료 거부나 안락사와 같이 죽음을 선택할 권리까지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관점이 적절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유언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갑자기 온전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거나 숨을 거뒀을 때, 유언은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려주는 귀중한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뜻이 나의 사후에도 잘 전달되게 하고, 가족들이 남겨진 재산을 두고 더 이상 가족이기를 포기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유언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언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장단점을 잘 비교해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정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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