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2024년 대표이사·사장단 인사를 어제 단행했다. 하이라이트는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인 호세 무뇨스 사장을 현대차 대표이사(CEO)로 발탁한 대목이다. 1967년 창사 이후 첫 외국인 CEO다. 그간 피터 슈라이어, 알버트 비어만, 루크 동커볼케, 브라이언 라토프 등 외국인 사장이 있긴 했지만 디자인, 연구개발(R&D), 안전 등의 부문을 맡았을 뿐 전체 경영을 책임지는 것은 무뇨스 CEO가 처음이다. 현대차뿐 아니라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외국인이 경영을 지휘하는 것은 이번이 첫 사례로, 파격적 혁신 인사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무뇨스 CEO의 발탁은 글로벌 인재 발탁과 성과주의 실천이란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스페인 출신인 무뇨스 CEO는 도요타 유럽법인과 닛산 미국법인을 거쳐 2019년 현대차에 합류했다. 글로벌 차 시장 흐름을 꿰고 있던 그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의 생산을 늘리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적극 나섰다. 그 결과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2018년 68만 대에서 지난해 87만 대로 늘었다. 이 기간 매출은 15조2900억원에서 40조8200억원으로 뛰었고, 3300억원이던 순손실은 2조7700억원 순이익으로 돌아섰다. 그는 부회장으로 승진한 장재훈 현대차 사장과 호흡을 맞춰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이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을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 기용하면서 글로벌 대외협력 총괄까지 맡긴 것은 적재적소 인사로 평가할 만하다. 김 사장은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부에서 주한 미국대사, 주인도네시아 대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권한대행 등 외교 요직을 지냈다. 관세 부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에 닥칠 위험을 관리하고 향후 미국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그만큼 적임자도 찾기 힘들다. 무뇨스 CEO와 함께 트럼프 2기를 헤쳐 나갈 투톱 역할이 기대된다. 더불어 조사 및 연구 활동, 홍보도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인사는 글로벌 비중이 높은 다른 대기업도 적극 벤치마킹해 볼 만하다. 과거 정의선 회장이 기아 CEO 시절 폭스바겐·아우디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의 디자인과 품질을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을 시작으로 누구든 역량이 있으면 외국인이라도 중책을 맡기는 인사가 이제 정착됐다. 현재 현대차 남양연구소 등엔 무뇨스 CEO 외에 동커볼케 사장,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 마크 프레이뷸러 전무, 사이먼 로스비 전무 등 글로벌 인재가 즐비하다.
외국인 경영진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국내 실정에 어둡다는 단점은 있지만 국내에 연줄과 빚이 없는 만큼 투명 경영과 글로벌 스탠더드 실행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세계적 흐름은 장점을 살리는 쪽이다. 글로벌 산업을 주름잡는 미국 테크기업에서도 중요한 것은 능력이지 국적이나 출신이 아니다. TSMC마저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외이사 6명 중 4명을 외국인으로 선임하고 이 가운데 3명은 반도체와 통신사 CEO 출신으로 구성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더 큰 도약을 이루려면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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