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사흘 연속 1400원 위에서 머물렀다. 외환당국이 이날 ‘적극적 시장 안정 조치’를 언급하는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지만 전날과 비슷한 수준에서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1400원대 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론 1450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상목 “시장 안정조치 적기 시행”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원50전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1405원1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장중 1409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전날 야간 거래에서 1397원50전까지 내려 환율이 3일 만에 1300원대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가 있었으나 장중 1400원 위를 유지했다.미국 달러화지수가 강세를 이어간 영향이 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54% 오른 106.630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11월 후 약 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날 외환당국은 구두 개입성 발언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시도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긴급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열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적극적 시장 안정 조치를 적기에 신속히 시행해 달라”고 관계기관에 당부했다. 또 “미국 신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와 함께 세계 경제 성장·물가 흐름,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관계기관 24시간 합동 점검 체계를 중심으로 각별한 긴장감을 갖고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기재부 국제금융국장과 한국은행 국제국장 명의로 한 공식 구두 개입보다는 수위가 낮았지만 시장엔 경계감이 나타났다. 추가 환율 상승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부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날과 비슷한 수준에서 주간 거래를 마친 만큼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환율, 1450원까지 오를 수도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1400원 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완전히 정립되기 전에는 불확실성이 클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강달러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은 “트럼프 취임 전까지 환율이 1450원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며 “취임 후 관세 정책 등이 현실화하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도 내년 1분기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제시했다.다만 환율이 1410원 이상으로 오르면 외환당국 개입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란 점이 변수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넘었을 때 한은은 ‘선진국형 외환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58억달러 가까이 달러를 순매도했다”며 “1400원 부근에서 당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시장 경계감이 추가 상승 압력을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수준 자체보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한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환율에는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한국의 펀더멘털 약화 우려가 더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며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센티먼트(분위기)가 악화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걷히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면 달러 강세가 약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미국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달러 약세를 선호하면서 강달러가 점차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 국고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돼 원화 수요가 커진 점도 중장기적으론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강진규/허세민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