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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중 곡 작업까지"…직장인 알고 보니 '반전 정체' [본캐부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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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뉴에이지부터 9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따뜻한 감성의 발라드, 그룹 쿨의 이재훈도 '좋아요'를 누른 유쾌한 '섬머송'까지 듣기 편한 음악을 찾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이언 정(Ian Chung)의 음악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폭넓다.

"회사 이름을 밝히는 게 조심스럽다" 할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그는 퇴근 후 음악을 만들며 전 세계 뮤지션들과 소통해 왔다. 매일 꾸준하게 음악 작업을 하면서 2년 넘게 활동했고, 30곡이 넘는 신곡을 발표했다. 그동안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악 플랫폼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그의 음악은 오는 15일에는 국내 플랫폼 멜론, 벅스, 지니 등에서도 들어볼 수 있게 됐다.

이언 정의 음악적인 토대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이언 정이라는 이름도 그때부터 사용한 그의 영어 이름이다. 영화 '비긴어게인'의 배경이기도 한 더블린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이언 정은 "아일랜드가 문학과 예술의 나라라 예술가들이 넘쳐났다"며 "저도 자연스럽게 영감이 떠올라 그때부터 노트북에 다운받은 프로그램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 OST 작업을 하는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고,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어릴 때 드라마 OST 앨범이 나온 걸 보면서 불만이었던 게, 제가 좋아했던 다양한 변주곡들이 다 담기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아쉬움을 담아 시청자 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쓰고, 그러다 연이 닿아 연락을 이어온 음악감독님들도 계셨어요. 제가 취업준비생이 됐다고 하니, 한 분이 '넌 영어도 하고, 음악도 하니 와서 같이 일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일과는 차이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싫어질 거 같아서, 결국 나오게 됐죠."


그렇지만 이후에도 음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 서울시향 홍보팀에서 근무했고, 비교적 퇴근 이후의 삶이 보장된 현재의 직장으로 이직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이언 정의 설명이다.

음악을 만들어 공유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협업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생각했던 음악을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처음엔 첼로와 피아노 등 연주곡을 중심으로 발표했고, 이후 가사를 붙인 노래까지 선보이게 됐다. 그의 첫 노래인 '리틀 버드'(Little Bird)는 우크라이나 가수 알렉스 빌야크가 불렀다.

가수와 연주자를 매칭해주는 사이트에서 알렉스 빌야크를 처음 만나게 됐다는 이언 정은 "목소리만 듣고 제가 생각한 노래와 너무 잘 맞아서 연락했는데, 알고 보니 우크라이나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유명 밴드 보컬이었다"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데이식스와 같은 존재와 협업을 하게돼 처음에 경력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하지만 '리틀 버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심해지면서 전기 공급이 끊겨 연락을 주고받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 이언 정은 "지금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때 처참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위기감도 느꼈다"며 "이 친구와 음악을 하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제작 과정을 전했다.

작은새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날개를 펴 날아오른다는 가사 내용처럼 '리틀 버드'는 듣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넸고, 이언 정에게도 자신감을 줬다. 이후 그는 알렉스 빌야크와 우리 말 '봄'을 그대로 제목과 가사로 담은 노래를 추가로 작업했고, 영어뿐 아니라 한글 가사를 붙인 노래도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는 점도 그의 음악을 듣는 재미를 더한다. 지난달 공개한 신곡 '사랑이란 그 이유만으로'의 경우 가수로 FM 89.32라는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 이는 이언 정의 목소리를 학습한 AI가 부른 노래다. "영감이 떠오를 때 녹음한 제 목소리를 듣는 것도 괴롭다"면서 "노래에 자신이 없다"는 그는 "제 목소리지만, 제가 부른 게 아니기에 제 생년월일을 담아 FM 89.32라는 이름을 가수로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장난 반, 재미 반이었어요. 제가 생각한 감성과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확 와닿는 목소리가 없어서 '가이드분이 녹음해주시면 내가 느낌을 설명해야겠다' 이랬었죠. 그러다 AI 샘플로 제가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놓은 게 있어서 입혀봤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딱 들어맞는 거예요."

고 김광석과 임재범, 양희은, 이문세, 성시경, 샤이니 온유 등 그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파트를 나눠 부른 '사랑이란 그 이유만으로' AI 커버 작업도 했다. 이후 김광석의 유가족도 알고 있는 자료 아카이빙 채널에서 "이 노래를 김광석 버전으로 제작해도 되겠냐"는 제안받았고, 김광석과 유재하 버전으로 녹음된 '사랑이란 그 이유만으로'가 공개됐다.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기록해 멜로디를 짜고, 이걸 모아 곡을 완성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주에서 4주라고 했다. 지금까지 쌓인 30여곡은 2년 넘게 쉼 없이 꾸준히 달려온 덕분에 쌓인 자산이었다. 아직은 "투자한 만큼만 버는 작은 가내수공업 정도"라고 이언 정은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소개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만큼 그의 음악이 주는 존재감은 가볍지 않다.

또한 본업이 있기에 "더욱 순수하게 음악을 할 수 있다"면서 웃는 이언 정이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들은 저의 이런 이중생활을 부러워하기도 하더라고요. 대중 음악가로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하고, 기록을 경신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창작 과정이 괴롭게 느껴질 수 있고요.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더욱 깊게 음악 이론도 배우고 싶어서 공부도 하고 있고요. 저도 즐겁게 음악을 만들고, 이걸 듣는 사람들도 마음의 위로와 치유를 받으셨으면 해요. 그런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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