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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다고 아이 낳나요"…프러포즈·중매 맛들린 지자체 [혈세 누수 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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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돈으로 주지. 이런다고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나요?"

결혼율,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한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프러포즈' 공간에 100억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대 남성 김모씨는 분노했습니다.

최근 떨어지는 결혼율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나는 솔로' 같은 소개팅 예능 방송이 인기를 끌자 지자체에서 우후죽순 소개팅 주선 사업까지 벌이며 수십억 원의 세금을 들였지만, 성과는 예상보다 더 처참합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협업해 들여다 본 지자체 프러포즈 공간·소개팅 사업의 냉정한 현주소를 전해드립니다.
'프러포즈 명소'에 110억 쓴다는 대구시
대구시는 올해 6월 총사업비 110억원을 투입해 2026년 초까지 대백프라자 앞 신천에 수상 프러포즈 공간을 조성하는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프랑스 센강 퐁네트 다리처럼 전국 선남선녀들의 프러포즈 명소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지는 떨어지는 결혼율과 출산율을 높여 보겠다는 겁니다.


대구시는 "프러포즈 라운지는 연인들이 바닥조명 위를 걸으며 수변 경관을 조망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러브로드', 둘만의 프러포즈를 위한 프라이빗 간이 이벤트룸인 '프러포즈룸',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걸 수 있는 '프라미스존' 등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역사회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대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소멸 위험지역 진입 직전의 청년정책이 프러포즈존 설치라니, 답답하고 민망하다"며 "청년이 처해있는 현실은 물론 청년의 취향,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사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대구시당도 "정말로 결혼 장려와 저출생 문제를 걱정한다면 프러포즈 존에 들어가는 110억원으로 결혼 장려 프로그램 지원, 출산 지원금, 양육비와 대구 거주 신혼부부 전세자금 지원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침 대구에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20대 남성 김모씨는 "이런 걸 만든다고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니 어이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대구에 거주하는 30대 미혼 여성 김모씨도 "요즘 누가 공개 프러포즈한다고…"라고 혀를 찼습니다.
미리 보고 온 '대구시의 미래'
대구시의 신천 프러포즈 조성 사업은 기시감이 다소 듭니다. 서울시에서도 2008년 11억원을 들여 공공 청혼장인 청계천 '청혼의 벽'을 만들었는데, 2018년까지 운영하다 현재까지 흉물처럼 방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시 예산의 10분의 1 수준만 날린 서울시가 훌륭해 보일 정도입니다.




최근 혈누탐팀이 찾은 청혼의 벽으로 이르는 산책로 일부는 끊겨있고, 인적도 없었습니다. 지나치는 시민 대부분 "잘 모른다", "처음 듣는다" 등 반응을 내놨습니다. 인근 주민이라고 밝힌 20대 전모씨는 "시민들 산책로에 프러포즈라니 너무 뜬금없다"면서 "이런 시설이 결혼 장려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과거 청혼의 벽이 운영되던 모습을 기억하는 70대 이모씨는 "청계천 끝자락이라 청년들이 찾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설공단 측은 "2008년 첫해 130건에 이르던 행사가 2018년 연 10회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시설물이 노후해 유행에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규모가 훨씬 큰 대구시는 그만큼 리스크도 큰 데, 과연 결혼 시장의 수요를 잘 파악한 것일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수십억 들인 지자체판 '나는 솔로' 성적
'지자체판 나는 솔로'라고 불리는 소개팅 주선 사업도 우후죽순 생기며 세금과 인력이 투입되고 있지만, 실효성엔 물음표가 찍힙니다. 이연희 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지자체로부터 받아 분석한 자료와 혈누탐이 각 지자체에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78회 행사가 추진됐습니다. 이 기간 서울·충북·제주를 제외한 모든 권역에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결혼 축하금' 등 현금성 지원을 빼고 오롯이 행사에만 들어간 혈세만 총 21억원을 웃돕니다.

행사 내용을 보면 '아이스 브레이킹', '치맥 파티', '스킨십 게임' 등 다채로운 듯 보이지만 성과를 보면 처참합니다. 해당 기간 소개팅 사업에 참여한 인원은 총 4060명, 결혼에 골인한 건 이 중 22쌍(1%)에 불과했습니다.

42곳의 지자체에서 관련 사업이 진행됐는데, 만남 매칭 건수가 10건 미만으로 나온 곳이 절반이었습니다. 결혼까지 골인한 사례가 나온 곳도 10곳에 그쳤습니다. 가장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지는 곳은 경기 성남이었습니다. 약 5억원을 쏟아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세금을 썼지만, 결혼한 커플은 2쌍에 그쳤습니다. 2억5000만원을 써 2번째로 많은 세금을 들인 경상북도는 가장 많은 6쌍이 결혼했습니다.



다른 지자체는 대체로 일회성에 그치는데, 성남시는 2023년에 5회, 올해는 8회로 행사 횟수를 늘리며 주기적으로 소개팅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성남시는 이에 대해 "작년 하반기에 처음 실시했는데 1년 안에 두 커플이나 결혼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높았다"고 자체 평가했습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8회 행사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6월 진행한 '2023 결혼인식조사'에 따르면 만남 주선 행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18~29세 남성 51%, 여성은 18%에 그쳤습니다. 애당초 소개팅 수요 자체가 크지 않은 데 국가가 나서서 이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어야 하나 의문이 듭니다.
'세금 낭비' 오명 벗고 결혼율 높일 방법은
노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지난해 3.8건으로 5년 전 5.0건에서 대폭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이런 사업이 몰린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은 5년 전에도 대체로 평균을 밑돌더니 지난해에도 대부분 평균을 하회하면서 수도권보다 낮은 조혼인율을 기록했습니다.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선 결혼율이 먼저 올라가야 하는데 청년층 인구 이탈이 극심해진 지자체들의 고민도 깊어지면서 이러한 사업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사업이 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합니다. 차라리 공공 예식장을 개선하는 등 결혼식장 비용을 대거 낮출 방안을 고민하거나, 결혼 정보 회사를 지원해 민간에서 이미 잘하는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결혼이나 출산을 꺼리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경제적 문제가 크다고 확인해주는 통계는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민 44.8%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로는 '결혼 자금 부족'(31.3%), '출산과 양육이 부담돼서'(15.4%), '고용상태가 불안정해서'(12.9%) 등 순으로 상위권 모두 경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이연희 의원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 집값 등 과도한 주거비용,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 근본적인 부분부터 살펴봐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전시성, 시대착오적 사업보다는 실제 저출생의 요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역별로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수도권은 만남의 장소나 유인이 넘치는 데 굳이 지자체가 나서서 소개팅이나 프러포즈 공간을 조성하기보단 거주 문제, 출산과 양육 환경 등을 개선하는 게 주효한 반면, 지방은 사라지는 젊은 층을 끌어들 수 있는 고용 정책 등을 강화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지자체판 '나는 솔로'를 지속해야 한다면 담당 공무원들의 지식 습득이 선행돼야 커플 매칭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본적인 지자체의 접근은 결혼 정보 회사의 역할을 대체하겠다는 뜻이지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면서 "이러한 사업을 고집해야 한다면, 결혼정보회사 전문가를 초빙해 워크숍을 가진다든지 전문가의 노하우를 습득하는 게 필수"라고 부연했습니다.

홍민성/김영리/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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