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참패하자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의 패배를 보도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유색인종 이민자 2세인 해리스가 미국 정부가 부패했다고 주장하는 78세 범죄자이자 전 리얼리티TV 스타에게 밀려났다”고 전했다. 해리스 선거 캠프 안팎에선 민주당이 고학력·고소득 좌파 엘리트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돌아선 라틴계와 Z세대
이날 NBC방송은 주요 10개 주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2020년과 비교하면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선택해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났다고 분석했다.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65%에 달했던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이번에 53%만 해리스 부통령을 선택했다. 트럼프의 득표율은 32%에서 45%로 급등했다. 최대 인구 집단인 백인 지지율이 58%에서 55%로 낮아졌음에도 트럼프 당선인이 대승한 것은 인종을 초월한 노동자·서민의 지지 덕분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사상 최고의 주식시장과 거시경제 수치를 자랑하는 동안 트럼프는 서민·노동 계층 미국인을 괴롭히는 높은 이자율, 인플레이션 등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라틴계 미국인 단체 유니도스유에스의 클라리사 마르티네스 카스트로 부회장은 “공화당이 경제문제에 대한 유권자와의 소통에서 민주당을 앞섰다”며 “이번 대선은 경제에 관한 국민투표였고, 히스패닉 유권자에게 경제는 늘 최우선 이슈”라고 말했다.
‘민주당 텃밭’이라고 여긴 18~29세 젊은 유권자의 표심도 상당 부분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0년 36%에 불과했던 트럼프 지지율이 이번에는 42%까지 올라갔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와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이 오프라인 커뮤니티 센터 대신 팟캐스트와 SNS를 적극 활용하고 인플루언서, 힙합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
○범죄 천국, 불법 이민 쇄도
불법 이민과 범죄율 증가 등 문제를 회피한 것도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외면당한 이유로 지목됐다. NYT와 시에나대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흑인 유권자 중 약 40%와 히스패닉 유권자의 43%가 남부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히스패닉 유권자의 45%와 흑인 유권자의 41%가 불법 이민자 추방에 찬성했다.트럼프 비난에 몰두한 것도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53%와 흑인 유권자의 35%는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 중 불쾌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당선인의 막말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유권자들이 이에 무뎌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흑인 유권자의 17%와 히스패닉 유권자의 41%는 해리스보다 트럼프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호감이 있다고 응답했다.
○낙태·인종·여성만 강조 ‘패착’
낙태 이슈 등 여성성을 강조한 대선 캠페인이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샤디 하미드 WP 칼럼니스트는 사설에서 “해리스가 자신이 흑인, 여성이란 미덕을 내세워 흑인, 유색인종, 여성이라면 자신에게 투표해야 옳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졌다”고 꼬집었다. 해리스는 2003년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 선거로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에는 전원 백인인 지방 검사들 얼굴과 함께 ‘변화의 시간’이란 문구를 쓴 광고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서도 같은 전략을 쓴 것이 패착이란 지적이다.히스패닉 비중이 높은 뉴욕 브롱크스 지역구의 리치 토레스 민주당 의원은 NYT에 “민주당이 점점 더 대학을 나온 극좌파의 포로가 돼 노동 계층 유권자와의 소통이 단절될 위기”라고 말했다. 마이클 허시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는 “PC(정치적 올바름)주의 또는 ‘깨어 있는’(woke) 이슈가 민주당을 장악한 것은 해리스에겐 재앙이었다”며 “공립학교의 트랜스젠더 운동선수 허용 논란 등으로 너무 많은 지지세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이현일/임다연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