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곳입니다. 시간으로는 ‘지금’이며 공간으로는 ‘여기’를 의미해요. 연극은 영어로는 플레이(play)고 일본어로 아소비(遊び)인데요. 모두 놀이에서 기인한 말입니다. 마당놀이는 지금 여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 순수의 연극입니다.”
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마당놀이 모듬전’ 간담회에서 손진책 연출가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고전의 골계미, 미래를 향한 개방성, 전통의 계승은 마당놀이가 4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했다. 오는 29일 개막하는 마당놀이 모듬전에서는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는 별명을 얻은 베테랑 배우 3인방이 특별 출연한다. 윤문식(심봉사)부터 김성녀(뺑덕), 김종엽(놀보) 팔순 안팎의 세 사람은 14년 만에 마당놀이에서 얼굴을 맞댄다.
마당놀이는 공영방송 MBC가 1981년 첫선을 보인 이후 30년간 약 350만 명의 관객이 든 작품이다. 1980년대에는 사회 문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대변해 인기를 모았다. 국내 이머시브 공연의 원조 격이다. 배우는 객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관객도 공연에 적극 참여했다.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 세 배우는 2010년 마지막 마당놀이 무대에 섰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이 공연을 국립극장이 ‘극장형 마당놀이’로 재구성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국립창극단 배우들과 명맥을 이어왔다. 이때는 ‘심청이 온다’ ‘놀보가 온다’ ‘춘향이 온다’ 등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해 무대에 올렸다. 대체로 호평이었지만 관객들은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이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이라며 그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마당놀이가 ‘앙꼬들’과 함께 돌아왔다. 윤문식 배우는 “다른 배우들과 ‘온전히 이 작품을 후대에 물려주자, 잊히지 않는 장르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올해 마당놀이는 원조 배우들과 함께 모든 이야기를 섞어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예를 들면 사랑을 속삭이는 춘향과 몽룡 사이에 난데없이 심봉사가 나타나서 밥을 빌러 온다거나, 공양미 삼백석으로 딸을 잃은 심봉사 앞에 놀보가 심술궂게 등장하기도 한다. 익숙한 인물들의 예측 불가능한 조합 덕분에 관객들이 한껏 웃다 보면 새로운 해를 맞이할 기운이 불끈 솟을 것이라는 게 출연진의 설명. 54회라는 장기 공연을 원캐스트로 이어가는 세 배우에게선 열의가 감돌았다.
부인과 사별한 슬픔도 마당놀이에서 달랬다는 배우 윤문식. 마당놀이는 그의 삶 그 자체다. “초창기에는 연극배우들만으로 이뤄진 마당놀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다양한 예술가들이 함께하게 됐다”며 “나는 이제 정말 마지막 무대니까, 앞으로는 알아서들 잘해주시길 바라요”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마당놀이 때문에 가족과 친지에게 놀보로 불린다는 배우 김종엽은 “김성녀, 윤문식과 셋이 뭉치게 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라며 “후배들의 열정적 모습을 보니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펼쳐진다. 하늘극장의 뒷면까지 객석으로 바꿔 배우 50여 명의 춤사위, 소리, 연기를 다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안무는 국수호, 작곡은 박범훈이 맡았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29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대장정을 이어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