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일번가에 있는 가게를 이용한 지 수년은 된 것 같아요. 요즘 쇼핑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지 않나요."
지난 4일 안양일번가에서 만난 박모씨는 "버스가 역까지 오지 않고 안양일번가에서 멈춰 정류장을 이용하기 위해 찾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양 최대 상권이자 수도권 남부 대표 상권으로 꼽히던 안양일번가가 수년째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 빠진 공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다.
안양역 상권, 코로나19 기점으로 공실률 고공행진 지속
안양일번가 일대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연말을 맞아 곳곳에서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하면서 인부들이 바삐 움직이고 공사 소음이 들려오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안양역을 향해 바쁘게 걷는 일부 행인과 공사 인부를 제외하면 상권을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음식점과 옷 가게, 이동통신판매 대리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공실이거나 폐업한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건물에 공실이 2~3개인 곳이 적지 않았고 안양일번가 중심가나 대로변 1층에서도 공실이 포진해 있었다.
일부 건물에서는 1층이 모두 공실인 경우도 있었다. 오랜 기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서 장기간 햇볕에 노출돼 빛이 바랜 임대 안내문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임대 안내문이 없더라도 폐업 안내문이나 전기요금 미납 안내문이 걸린 가게도 상당수였다.
인근의 한 개업중개사는 "코로나19 이후로 공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매출이 줄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니 폐업하는 가게가 늘고, 폐업한 가게가 많아 상권이 침체하니 새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개업중개사도 "안양역 일대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가게가 문을 닫은 뒤 3년 넘게 공실인 점포도 여럿"이라며 "예전에는 웃돈을 줘도 못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대로변의 목 좋은 1층도 권리금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안양역 앞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97%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말에는 2.8%에 그쳐 경기권에서 가장 낮은 공실률을 보였지만, 약 5년 만에 공실률이 5배 높아졌다.
같은 기간 집합상가 공실률도 25.48%에 달했다. 상가 네 곳 가운데 한 곳은 비어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경기 남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안양역 인근 상권 공실률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20%대로 치솟으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상권보다 역을 이용하기 위해 지나치는 길로 인식되는 처지다.
자율상권구역으로 출구 모색하지만…언 발에 오줌 누기"
일대 상권이 공실투성이의 ‘텅 빈 거리’로 전락하자 안양시는 안양일번가를 포함한 안양역 주변 상권을 하나로 묶어 내년 자율상권구역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자율상권구역으로 지정되면 중소벤처기업부의 상권 활성화 사업을 통해 5년간 10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방침이다.
다만 상권 쇠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활성화 기대감은 낮아진 상태다. 20년가량 안양일번가에서 자리를 지켜왔다는 한 상인은 "가게 크기를 줄이며 버텨왔지만, 이제 한계라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며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이미 죽어버린 상권을 되살리기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인들은 소비자들이 평촌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하지만, 코로나19 이전까지 장사가 잘됐던 점을 생각하면 핑계일 뿐"이라며 "소비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는데 우리는 수십 년을 제자리에 있었으니 뒤처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안양일번가와 같이 높은 공실률로 어려움을 겪는 상권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온라인 직구나 음식 배달 문화가 크게 늘었다"며 "이커머스 업체들이 신선식품까지 판매할 정도로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기존 상권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아서, 인건비가 올라서 장사가 어렵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온라인 쇼핑 문화가 지속되는 이상,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이 아니라면 향후에도 상가 수요가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