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주요 가계대출 상품의 비대면 판매를 속속 중단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지만, 일률적인 대출 중단 조치가 확산하면 당장 대출이 필요한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은행권에 가계대출을 늘리지 말라고 주문하면서도 대출 금리 인하까지 압박하고 있어 향후 대출 판매 중단 조치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달 6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비대면 판매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선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영업점 창구를 직접 방문해야만 한다.
신한은행은 "가계대출의 안정적 관리와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 공급을 위해 비대면 가계대출 상품 판매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의 이번 조치는 우리은행 등 다른 은행의 선제적인 대출 중단으로 인해 소비자가 대출이 가능한 곳으로 쏠리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이뤄졌다.
앞서 우리은행은 이달 5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비대면 방식의 주담대, 전세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지난 4일 발표한 바 있다. 집단대출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가계대출 상품의 비대면 판매를 중단한 우리은행의 결정이 공개되자 바로 다음날 신한은행이 뒤따라 대출 중단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기업은행도 지난달 29일부터 주력 주담대 상품인 'i-ONE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i-ONE 전세대출', 신용대출 'i-ONE 직장인스마트론'의 비대면 판매를 중단했다. 주력 가계대출 상품의 판매를 사실상 전면 중단한 셈이라는 게 기업은행의 설명이다.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가계대출 취급 자체를 중단한 이유는 가계대출을 줄이지 않으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연초에 보고한 경영계획 목표치보다 연말까지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폭이 크면 내년 영업에 패널티를 주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21일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증가폭은 경영계획 목표치를 52~376%씩 상회했다.
금융권은 비대면 대출 중단 조치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계대출 잔액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대출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까지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임원회의를 열고 "은행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최근 몇 달 동안 확대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 주체가 금리 부담의 경감 효과를 체감해야 하는 시점에서 (금리 부담 경감 효과가) 예대금리차 확대로 희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복현 원장이 언급한 지표는 예대금리차로, 대출 금리를 인하하라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원장이 경감 대상으로 지목한 '금리 부담'은 대출 금리를 낮춰야만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사실상 대출 이자율을 내리라는 주문으로 은행들은 해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은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동시에 가계대출 증가세까지 억제하라는 주문은 모순된 메시지”이라며 “대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은행 입장에선 대출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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