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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커지는 ESS…K배터리 '캐즘'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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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4일. 밤 11시의 미국 뉴욕은 말 그대로 어둠에 휩싸였다. 도시 전체가 정전으로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중교통 항공기 등이 멈춰섰고, 상업 시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전력이 복구되는 데 3일이 걸렸다. 당시 피해액만 60억달러(약 8조원)에 달했다.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 이상 기후로 늦더위가 기승이던 2011년 9월 15일. 정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냉방 수요가 급증해 예비 전력이 안정 기준(400만㎾) 이하로 떨어진 게 문제였다. 정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전력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전력은 생산된 뒤 저장하기 어렵다는 비효율성도 문제로 지목된다. 한 번 생산된 전력은 전선을 타고 흐르다가 일정 시간 사용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이런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ESS에 과잉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면 전력 수요가 커질 때 송전할 수 있다. 변전소에 문제가 생겨도 예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용도로 쓰이는 ESS
최근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치가 늘며 ESS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이들 에너지는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진다. 수급 불일치가 큰 편이다. 전체 발전량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 계통 전반의 안정성이 더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ESS를 결합하면 송배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소에 ESS를 연계하면 태양광 발전소만 가동하는 데 비해 발전 수익이 두 배가량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구체적으로 ESS는 전력용, 상업용, 무정전전원장치(UPS)용, 가정용, 통신용 등 다섯 가지 용도로 쓰인다. 전력용 ESS는 발전과 송배전을 포함하는 전력 공급 시스템에 활용된다.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전류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한다. 또 발전된 전력과 수요 전력의 차이에 따라 부하 변동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주파수가 시시각각 변해 전력의 질이 떨어진다. 전력용 ESS는 이를 안정화해 전력 품질을 높여준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성을 평준화해주는 역할로도 주목받는다.

상업용 ESS는 시간대별 전기요금의 차이를 이용해 전기요금을 줄여준다. 가정용과 달리 상업용 전기는 시간대별, 계절별로 요금이 다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때는 비싸고, 적게 사용하는 때는 싸다. 즉, 봄·가을에는 저렴하고 여름·겨울엔 비싸다. 또 심야시간(경부하)에는 저렴하고, 주간(중간부하)과 저녁시간(최대부하)에는 비싸다. 전기료는 사용한 전력량과 시간대별 요금을 곱해 산정한다. 상업용 ESS를 설치하면, 요금이 싼 시간대에 충전했다가 비싼 시간대에 쓸 수 있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UPS는 갑자기 정전이 발생했을 때 짧은 시간 동안 전력을 공급해 정전을 막아준다. 사용자들은 데이터를 저장할 시간을 확보하고 전력이 복구될 때까지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UPS는 데이터센터, 병원, 공장 등 24시간 전력이 필요한 현장에 주로 쓰인다. UPS를 보조 전원으로 설치하면 정전될 때 데이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UPS용 배터리는 고출력 성능을 갖춘 배터리가 주로 쓰인다. 설치 공간이 좁기에 적은 수의 배터리로도 강한 힘을 내는 배터리가 선호된다. 반면 전력용과 상업용 ESS에 쓰이는 배터리는 고용량, 긴 수명을 갖춰야 한다.

가정용 ESS는 주로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연계해 이용된다. 낮엔 집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한 뒤 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식이다. 각 가정의 전력 구매를 최소화해준다. 또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산간, 낙도의 가정에서도 갑자기 정전이 발생할 때 저장된 전기를 쓸 수 있다. 전력 수급이 원활한 아파트가 많은 한국에선 가정용 ESS 시장이 크지 않다. 그러나 지진이 잦은 일본엔 가정용 ESS가 많이 보급됐다. 미국, 호주 등 신재생에너지 수요가 많은 국가나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유럽에선 각 가정에 ESS가 활발히 설치되고 있다.

통신용 ESS는 각 기지국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통신 환경을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전파가 잘 닿지 않는 기지국은 전력을 충분히 공급받기 어렵다. ESS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최근 ESS에는 리튬이온배터리가 가장 많이 쓰인다. ESS는 대규모 전력을 저장해야 해 정보기술(IT) 제품보다 많은 배터리 셀이 필요하다. 수많은 배터리 셀은 모듈로 묶고, 모듈을 연결한 랙 형태로 장착된다. 모듈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셀을 보호하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각종 제어 장치, 보호 회로도 들어간다. 랙은 셀의 온도, 전압 등 상태를 관리해준다.
○韓 배터리, ESS 시장 정조준

최근 전기차 판매 둔화로 업황이 나빠진 배터리업계에 ESS는 ‘탈출구’로 여겨진다. 미국, 유럽 등의 에너지 기업이 ESS 설치를 늘리면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기업에 발주를 늘리고 있어서다.

삼성SDI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16TWh 규모였던 미국 인공지능(AI)용 ESS 시장은 2030년 약 여섯 배로 확대될 전망”이라며 “이 가운데 미국 내 전력용 ESS 수요는 올해 41GWh에서 2030년 90GWh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SDI는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을 높인 전력용 ESS 배터리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삼성SDI는 3분기 ESS용 배터리 매출이 전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4분기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단일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며 장기 공급 계약이 늘고 있다”며 “삼성SDI는 미국 3대 메이저 전력 회사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2025년 납품하는 장기 수주 물량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또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도 준비 중이다. 삼성SDI는 삼원계인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로 ESS용 배터리를 만들고 있다. LFP 배터리는 NCA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고객사에 따라서는 넓은 부지를 확보한 경우엔 LFP 배터리를 선호할 수 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지난 9월부터 울산 사업장에 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2026년부터 생산에 나선다. 회사 관계자는 “울산 사업장의 ‘마더 라인’을 검증한 뒤 미국 진출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북미 전력망을 중심으로 ESS용 배터리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유럽에 있는 공장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을 일부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ESS용 배터리 라인을 설치하는 데는 큰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운영 중인 공장의 가동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판매 둔화로 설비를 놀리느니, 성장성 있는 시장에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2028년 미국 ESS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기 위해 내년부터 미국에서 ESS용 LFP 배터리 셀 양산에 나서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미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회사 측은 “에너지 밀도를 20% 이상 개선한 LFP, 고도화된 ESS 통합 시스템 솔루션을 통해 ESS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SK온도 향후 ESS용 배터리 생산라인을 확보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올해 초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서 ESS용 배터리를 선보였다.

김형규 기자/도움말=삼성SDI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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