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기술 혁신의 정체, 그리고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해 많은 대기업이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혁신의 양과 질이 모두 하락세를 보이는 대기업들은 어떻게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한국 대기업보다 몇 배 더 큰 미국 대기업들의 성장 방식을 먼저 살펴보자.
미국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인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구글(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은 흔히 ‘FAGMA’로 불린다. 이들 기업은 전 세계 경제와 기술 혁신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 가치는 메타가 1조4800억달러, 아마존이 1조9800억달러, 구글이 2조달러, 마이크로소프트가 3조900억달러, 애플이 3조4600억달러로 총 12조10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2024년 10월 10일 기준 48조4900억달러인 S&P500 총시가총액의 약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약 360조원으로, 달러로 환산하면 2700억달러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약 2100조원이며, 삼성전자는 그중 약 17%를 차지하지만, 국제무대에서 보면 여전히 규모가 작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대한 미국 빅테크 기업은 어떻게 성장을 지속할까? 막대한 자본과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는 이들 기업은 모든 기술을 직접 연구개발하며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20년 이후 인수합병(M&A) 현황을 살펴보면 메타는 97건, 아마존은 101건, 구글은 262건, 마이크로소프트는 210건, 애플은 113건의 인수를 완료했다. 소규모 인수만 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메타와 아마존의 평균 인수 금액은 약 13억5000만달러(약 2조원)에 이른다. 아마존은 현재 위즈(Wiz)를 230억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블리자드를 687억달러에 인수했다.
반면 한국 대기업의 인수합병 현황은 어떨까? CEO스코어에 따르면, 2023년 국내 500대 기업의 M&A 건수는 총 60건으로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 투자 금액도 14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그중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인수는 5건에 불과했다. 2023년 국내 최대 규모 M&A인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2조5000억원)도 미국 빅테크의 평균 인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며 산업을 주도하고 싶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기업이 커지는 순간, 그 기업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에서 일하려는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 이들이 위험하지만 성공할 경우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신규 사업이나 해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신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더라도 특별한 보상이 없고, 실패할 경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현실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약화시켜 혁신을 저해한다.
공정한 사회라면 실패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사업에는 성공했을 때 고수익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요즘 문화는 조화로운 사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위험을 부담한 사람에게 고수익을 기대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직원들에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잘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스스로 기술 개발하기보다는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다. 인수합병에는 기술 개발 외에도 다른 장점이 있다. 피인수 기업의 인재를 확보하고, 시장 경쟁자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채용하기 어려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들을 기업과 함께 인수하는 것이다. 또한 잠재적인 경쟁 기업을 흡수해 시장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인수합병이 활성화되고, 시장 확대와 성장을 대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수합병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대기업의 M&A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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