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1890~1918)는 우수(憂愁)를 그려내고 싶었다. 자화상과 초상화뿐 아니라 풍경화에서도 사람들이 유독 강한 끌림을 느끼는 건 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곳곳에 묘한 ‘멜랑꼴리(melancholy)’가 서려 있어서다. 왈츠처럼 우아하지만 빛바래듯 쇠락해버린 제국의 풍경은 실존에 대한 불안을 투영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실레와 그가 추앙했던 스승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예술 발자취를 좇아보기 위해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비엔나전)을 관람한 후 동유럽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실레는 10년 남짓의 짧은 활동으로 작품 수가 많지 않고, 손상이 가기 쉬운 금박을 재료로 걸작을 남긴 클림트의 주요 작품은 영구반출 금지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옛 제국의 땅을 밟지 않는 이상 직접 원화를 만나기가 어렵다.
실레가 본 그 풍경, 체스키크룸로프블타바강 위에 떠 있는 한 떨기 장미. 체코의 소도시 체스키크룸로프는 실레가 풍경화를 그리던 장소다. 그는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이곳을 자주 찾아 보헤미아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2011년 소더비 경매서 약 426억 원에 팔린 ‘빨래가 널린 집’이나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 풍경’ 등의 배경이다. 소박한 도시와 붉은 풍의 건물, 강변을 따라 굽이진 길은 아름다우면서도 동유럽 특유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체스키크룸로프 도심엔 에곤 실레 아트센터가 있다. 실레의 스케치 등 습작들과 메모, 가족과 함께했던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른 나이에 요절한 탓에 남긴 작품 수가 적은 만큼, 실레의 흔적을 마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레오폴드부터 벨베데레까지 두 거장이 탄생한 빈클림트와 실레의 ‘빈 모더니즘’ 정수는 이름 그대로 빈이 품고 있다. 가장 많은 에곤 실레 컬렉션을 가진 레오폴트 미술관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벨베데레 미술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쓰었던 벨베데레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4점에 달하는 클림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가 벨베데레 상궁에서 전시돼 있다. 꽃이 만발한 초원 위 황금빛 휘광이 감싼 공간에서 서로에게 황홀하게 취해 있는 연인이 그려진 그림으로, 클림트에게 ‘황금의 화가’란 이름이 붙게 한 작품이다. 외설스러우면서도 고혹적인 ‘유디트’ 등 걸작들과 함께 ‘포옹’, ‘가족’ 등 에곤 실레의 그림도 볼 수 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