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을 가르치는 나는 늘 우리 산업 역사의 중심에 있는 ‘1958년 개띠’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의자료와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다가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당시 한국은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2차 제품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 한국과 가나 그리고 북한의 1인당 GDP가 나란히 제시된 유엔 자료(2016년)를 보면 한국은 2.7만 불이며, 가나는 0.15만 불이고, 북한은 0.016만 불이다. 가나 경제는 여전히 농업과 광업 등 1차 제품에 머물렀으며 수출 총액의 60%는 카카오, 보크사이트, 금, 금광석, 목재 등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한도 가나보다 더 못한 경제 상황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매년 민주화 지수를 발표한다. 2022년 우리나라는 조사국 전체 167개국 중 전체 24위로 완전 민주주의 국가에 속하는 8.03점을 받았으며, 가나는 6.43점으로 전체 63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북한은 1.08점을 받아 167개국 중 165등을 차지했다.
1960년 세 나라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가나와 북한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남한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경제성장의 1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민주주의 발달과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 프로이센과 일본, 러시아,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근대화 과정을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이루어냈다. 이 세 나라가 이토록 극명한 차이를 보인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대런 아세모글루는 ‘38선의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제도’라고 한 반면,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분석하였다. 1960년 남한이나 북한은 인위적으로 분단된 국가라서 제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같다. 차별의 시작은 1945년 남북한이 판이한 경제를 운용하고 나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남한은 미국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이승만이 정부를 이끌며 초기 경제 및 정치제도를 정비했다.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시장경제를 채택했고 1961년 이후 박정희는 성공적인 기업에 대출과 보조금을 몰아주며 사실상 고속 경제성장에 온 나라의 힘을 실었다. 남한이 지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라는 가치와 ‘시장경제’라는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고, 북한이 지독한 정체 상태에 머문 이유는 세습을 위한 주체사상으로 자유와 사유재산이 없는 계획경제를 운영한 결과이다.
어느 나라가 파괴적 혁신이나 신기술 도입에 유리한 제도이냐가 승패를 갈랐지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아닌 것에는 틀림없다. 첫 계단도 넘지 못한 가나나 북한은 그만두고, 이제 남한은 다음 계단으로 건너뛸 때이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한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가 잘못되면 지난 시절 풍요는 사라지고 중국 관광객의 발 마사지나 일본 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는 염려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지 본질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가 존재한다. 본질적 가치는 “손해와 이익의 개념을 떠나서 반드시 지켜야 근본 가치이다.” 국가의 안보나 자유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개인의 복지가 ‘불리’할 때도 양보할 줄 안다. 도구적 가치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지키는 가치이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노동, 기업가 정신, 생산성, 투자, 혁신 등은 도구적 가치이다. 도구적 가치는 목적을 달성하면 버리면 된다.
그런데 왜 강대국은 그런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난한 나라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가? 일론 머스크는 주당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못 바꾼다면서 80시간을 강조했다. 일본이나 독일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노동 강도가 우리보다 더 세고, 생산성 향상이 더 높다. 왜 이들 나라는 편안하게 쉴 때도 되었는데 열심히 일하기를 그만두지 않을까? 아마도 그들 나라는 본질적 가치가 우리보다 더 높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가 생존, 행복, 자유, 복지이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성장의 엔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직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노동, 기업가 정신, 생산성, 투자, 혁신이라는 가치를 버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는 이런 소중한 가치가 과거에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너무 쉽게 버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