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빠른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2021년 도입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후보지마다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신청 초기에는 이탈을 억지로 막더니 이제는 사업 지연·무산을 무기로 공공기여를 강요한다는 게 후보지 주민들의 주장이다.
첫 신통기획 취소에…후보지들 "사업 지연 무기로 삼아"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는 최근 강북구 수유동 170-1일대, 서대문구 남가좌동 337-8일대 등 2곳에 대한 신통기획 재개발을 취소했다. 30% 넘는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분쟁이 장기간 이어진 탓에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다.신통기획은 공공이 민간의 정비사업을 지원해 사업 속도를 앞당기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택공급 모델이다. 일반적인 재건축보다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도시계획 관련 규제를 완화해 통상 5년 이상 소요되는 정비구역 지정을 2년가량 단축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그에 따른 공공기여가 요구된다.
정비사업을 빠르게 진행한다는 설명에 후보지가 80여 곳으로 불어나는 등 긍정적 반응이 쏟아졌지만, 도입 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재개발을 놓고 주민 찬반이 엇갈리거나 시가 요구하는 공공기여가 과도하다는 불만이 쏟아진 탓이다.
신통기획 가운데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올해 1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중랑구 면목7구역이다. 하지만 면목7구역도 입주까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신통기획이 제 이름값을 하지 못한 셈이다.
신통기획 후보지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서울시는 지난 2월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개정,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토지 등 소유자 25% 이상 또는 토지 면적의 2분의 1 이상이 반대하는 경우 입안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반대가 많아 조합설립 동의 요건(찬성 75%)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은 배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번 후보지 선정 취소는 그 첫 사례가 됐다.
이달에는 ‘단계별 처리기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통합기획 완료 후 기한에 맞춰 사업 절차를 밟지 못하면 신통기획 절차를 취소하고 해당 정비사업을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신통기획 절차가 취소되면 일반 재건축 단지로 전환되고 신통기획 인센티브도 사라진다. 정비구역 지정 절차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에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고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처리기한제' 도입에 "토끼몰이식 행정" 반발
이를 두고 일선 후보지들은 "토끼몰이식 행정"이라며 서울시에 반발하고 있다. 신통기획 초기에는 주민 반발이 커도 철회해주지 않다가 사업 지연과 공사비 상승에 대한 주민 우려가 커지자 선정 취소를 무기로 공공기여를 강제한다는 주장이다.한 신통기획 후보지 주민은 "예전에는 위법 요소가 있고 주민들이 반대해도 신통기획 취소를 못 하도록 서울시가 막아섰다"며 "공사비가 급등해 주민 우려가 커지니 이제는 사업 지연을 무기로 과도한 공공기여를 요구하는데 주민들이 버틸 재간이 없다"고 호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재건축 사업이다. 2021년 조합 집행부가 주민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신통기획을 신청했고, 소유주의 85%는 신통기획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철회 가능성을 일축하며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신통기획을 확정했다. 결국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신통기획에 따른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후보지 주민도 "공사비가 점점 오르니 더 늦어지면 재건축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주민이 많다"며 "서울시 말을 듣지 않으면 신통기획이 취소되고 사업이 지연되는데, 결국 재건축을 포기하느냐 서울시에 무조건 항복하느냐 양자택일로 내몰렸다"고 토로했다.
공공기여를 놓고 1년 넘게 주민 반발이 거셌던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도 최근 시가 요구한 기부채납 시설인 노인요양시설 '데이케어센터'를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비구역 지정 절차만 2년 넘게 진행했는데, 서울시가 단계별 처리기한제 첫 적용 단지로 시범을 지목하면서 신통기획이 취소돼 재건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영향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신통기획 공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이 난항을 겪는 후보지는 버리고 가겠다고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곳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겠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은 후보지는 신통기획 철회를 검토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