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자동차공장, GS칼텍스의 정유소, 포스코 제철소, 삼성중공업 조선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업 현장에 인공지능(AI)이 본격 도입된다. 첫 해 26개 현장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200개까지 확산해 대기업부터 협력업체까지 제조업 밸류체인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AI자율제조 선도프로젝트 협약식’을 열고 올해 추진할 26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선도프로젝트에는 현대차, GS칼텍스, 포스코, 삼성중공업, HD현대미포, 에코프로, 대한항공, 코오롱 등 12개 업종의 대기업 9곳과 중견·중소기업 17곳이 참여한다.
AI자율제조 선도프로젝트는 우리 산업의 AI 자율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 산업별 협회·단체가 참여해 기술을 개발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일종의 ‘기술 동맹’이다. 12개 업종의 총 153개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한다. 참여 기업의 매출을 합산하면 제조업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산업부는 첫 해 사업으로 당초 10개 프로젝트를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213개에 달하는 신청이 몰릴 정도로 산업계의 관심이 쏠리면서 지원 대상을 26개로 확대했다.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에 민간 기업들이 이처럼 주도적으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프로젝트의 흥행엔 생산인구 감소, 치열해지는 생산성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의 절박함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현대차는 AI와 로봇을 활용해 공정 계획과 스케줄을 최적화하고, 수요에 맞게 물류와 생산 경로를 실시간으로 조정해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다품종 유연생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AI를 통해 공정의 온도, 압력, 유량 등 주요 변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생산 비율을 조정하는 ‘AI자율제조 최적운영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숙련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조선업계는 삼성중공업이 배관 절단부터 용접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한 AI시스템을, HD현대미포는 협동 로봇의 용접 작업 자동화, AI를 통한 용접 품질 분석하는 디지털트윈 생산관리 시스템 구축할 계획이다. 숙련 기술자 은퇴로 인력난과 생산 기술 단절이 가속화하고 있는 섬유 산업에선 코오롱이 무인 물류 시스템을 통해 공정 자동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들도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제주 삼다수는 과일 음료용으로 쓰이는 ‘못난이 과일’ 선별에 머신비전 AI를 활용하기로 했다. 연간 생산되는 45억개의 감귤 중 8억개 가량이 품질엔 문제가 없지만 외형이 좋지 않아 일반 소비자에게 팔긴 힘든 못난이 과일이다. 그간 수작업에 의존했던 선별 작업을 AI로 자동화해 정확도는 높이고,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6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전체 투자비는 3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4년 간 1900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한다. 산업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30% 이상의 생산성 향상과 20% 이상의 제조비용 절감, 50% 이상의 제품결함 감소, 10% 이상의 에너지소비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산업부는 올해 26개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200개로 프로젝트를 확대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프로젝트의 실행력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산업별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국책 공학 연구기관을 간사 기관으로 선정해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성과를 축적하는 역할을 맡겼다.
이들 연구원은 축적한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모든 기업이 제조혁신에 활용할 수 있는 제조업계의 챗GPT격인 ‘AI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계획이다. 각 기업이 파운데이션 모델에 자신들이 가진 제조 현장 데이터를 투입하면 AI가 공정 최적화, 품질 검사, 설비 진단 등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해주는 것으로, 이르면 2026년 제조 현장에 보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