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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만 따라가 없애는 '마법의 탄환'…항암제 역사 바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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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항암제 기술로 꼽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분야의 글로벌 1위 기업 일본 다이이찌산쿄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 약물보다 복잡한 ADC 구조와 부족한 생산 역량 등을 고려하면 한국 기업과의 협력 기회는 늘어날 전망이다.

오쿠자와 히로유키 다이이찌산쿄 사장(사진)은 “항암제 개발에 집중하면서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제조 역량을 확대하는 게 목표”라며 “이런 분야 한국 기업과 협력한다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4월 다이이찌산쿄그룹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는 그는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이이찌산쿄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2019년 말 ADC 항암제 ‘엔허투’ 상용화에 성공했다. 엔허투의 지난해 매출은 3조원을 넘었다. ADC는 정상 조직엔 영향을 적게 주고 암 살상력을 높여 ‘항암 유도미사일’ ‘마법의 탄환’으로 불린다.

그는 “항체, 약물, 링커 등 ADC 구성 요소 중 특정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과 경쟁력을 보유한 회사라면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이라고 했다.
항체약물접합체 기술력 '최고'…유방암 신약 '엔허투'로 홈런
기존보다 생존기간 2배 연장…글로벌 ADC 매출만 3조원
2022년 ‘세계 암 올림픽’으로 불리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주인공은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유방암 신약 ‘엔허투’였다. 기존 항암제보다 생존 기간을 두 배 연장해준다는 연구 결과에 청중석에 앉아 있던 각국 의학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엔허투 이전에도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을 활용한 항암제는 있었다. 하지만 암세포만 따라가 정교하게 없애는 ‘마법의 탄환’을 현실에 가깝게 재현한 약물은 엔허투가 시작이었다. 다이이찌산쿄의 ADC 플랫폼(DXd-ADC)이 세계 제약산업 역사를 바꾼 것이다.

다이이찌산쿄는 1915년부터 합성화합물을 개발한 다이이찌제약과 1899년 창립한 항체기업 산쿄가 2005년 합병해 탄생했다. 두 회사의 만남이 없었다면 합성화합물과 항체를 연결한 ADC 분야 ‘1등 기업’을 일구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다이이찌산쿄의 글로벌 ADC 매출은 3조원을 넘었다. 업계에선 2028년 14조원으로 1위를 이어갈 것으로 평가한다. 합병 당시 16조원이던 기업 가치는 80조원 넘게 성장했다. 올해 최고점이던 8월 말엔 100조원을 넘겼다.

내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할 오쿠자와 히로유키 다이이찌산쿄 사장은 1986년 산쿄에 입사해 두 회사 통합 등을 이끈 주역이다. 고속 성장의 비결로 전략적 합병, 글로벌 인재 영입, 빅파마와의 협업 등을 꼽은 그는 차세대 ADC와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이 성장동력을 이을 것이라고 했다.

▷2005년 합병 이후 짧은 시간에 세계적 신약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다이이찌산쿄의 신약 개발 역사는 120년이 넘습니다. 합병이 이뤄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죠. 원류엔 벤처정신이 있습니다. 산쿄는 소화제와 아드레날린 역사의 시작에 해당하는 신약을 개발했습니다. 다이이찌제약도 순환기 계열 혁신 신약 개발 기업이었죠. 합병 당시엔 순환기 영역 ‘파워하우스’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10년, 20년, 30년 후 의료 수요 변화를 분석해 암 영역에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통합 초기 비전인 ‘제약 분야 글로벌 혁신가’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죠. 산쿄와 다이이찌제약 연구진이 힘을 합쳐 2010년 구성한 ADC연구소가 엔허투라는 성과를 냈고, 결국 다이이찌산쿄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두 회사가 ADC를 개발하려는 운명처럼 서로를 택했습니다.

“다이이찌산쿄 합병 직전 야마노우치제약과 후지사와약품이 합병해 아스텔라스제약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일본 내 상위 10위권 제약사 중 규모 등을 고려하면 합병 상대 후보는 2~3개 정도였습니다. 산쿄와 다이이찌제약이 합병하면 순환기 영역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죠. 여담이지만 두 회사 간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로 가까웠습니다(웃음).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합병 배경이 됐죠.”

▷100년 넘은 역사를 지닌 회사 합병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 각자 후보물질을 어떻게 평가할지, 영업 조직은 어떻게 재편할지 등 논의 주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상당히 격렬한 토론이 이뤄졌죠. 이때 ‘내가 산쿄 출신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더 맞다’고 주장하거나 ‘다이이찌가 해온 방식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틈이 메워지지 않습니다. 제약 분야 글로벌 혁신가란 방향성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하면서 의사결정한 게 성공 비결이 됐습니다. 그 결과 인사, 조직, 시스템, 과학, 기술, 노하우 등 두 기업 자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융합을 이뤘죠.”

▷2008년 인도 복제약 회사 란박시를 5조원에 인수했다가 6년 만에 재매각하는 결정도 직접 하셨습니다.

“란박시는 당시 50개국에 영업 거점을 보유했습니다. 인도에 공장도 있었죠.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를 도입하는 게 인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란박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이를 은폐한 거죠. 다이이찌산쿄엔 뼈아픈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교훈도 얻었습니다. 같은 윤리관을 공유하지 않는 상대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를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2016년 ‘항암제 전문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엔허투로 성공했습니다.

“항암제 상업화를 위해선 글로벌 임상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순환기 영역에선 이런 능력이 충분했지만 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재를 영입해 이를 극복했죠. 아스트라제네카에서 항암제 임상을 주도한 안토완 이베르와 암젠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담당한 고가 준이치 등을 영입한 게 항암 분야 성공 열쇠가 됐습니다. 당시 경영을 맡았던 나카야마 조지 CEO는 엔허투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과감한 의사결정을 했죠. 2019년 아스트라제네카와의 전략적 제휴 결정도 주효했습니다.”

▷1등 기업 경영가로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나요.

“‘DXd-ADC’ 플랫폼으로 6개 항암제를 동시 개발 중입니다. 매출과 이익 규모로 보면 많은 물질을 동시에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데엔 제약이 있습니다. 제품을 하루빨리 환자에게 제공하는 게 중요한데 혼자 힘으로 해내기는 쉽지 않죠. 글로벌 항암제 경쟁력을 갖춘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머크(MSD)와 공동 개발 전략을 택한 배경입니다. 두 회사에서 받은 계약금과 개발·판매 인센티브(최대 약 50조원)는 자체 신약 개발 등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일본 야마토운송 회장을 지낸 오구라 마사오의 ‘경영은 논리의 축적’이란 말을 경영 철학이자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알려졌습니다.

“혁신 산업의 리더는 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환자 중심주의 가치도 중요하죠. 환자를 중심으로 두고 과학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경영 원리이자 원칙입니다. 세계 1만9000여 명의 직원은 모두 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평소 역량과 책임을 다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게 결국 다이이찌산쿄의 목표를 이루는 길입니다. 기업의 목적과 직원 개인의 가치·목표가 만나는 교집합을 찾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엔허투 신화’를 이을 후속 신약은 무엇인가요.

“ADC는 암뿐 아니라 다른 질환 치료제로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차세대 ADC 연구도 진행 중이죠. 다이이찌산쿄는 화이자, 모더나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에서 코로나19 mRNA 백신 제조 승인을 받았습니다. mRNA 연구도 확대하고 있죠.”

▷한국 기업들도 ADC 연구를 늘리고 있습니다.

“제약산업에서 R&D 성과가 나타나려면 투자 규모와 시간에서 최소한의 임계량이 충족돼야 합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장기적인 호흡으로 기업이 가진 우위 기술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죠. 기업이 장기간 인적·물적 투자를 하려면 정부 지원도 중요합니다.”
글로벌 제약 공룡들, ADC 기술 확보戰…2033년 40조 시장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엔허투’의 성공은 글로벌 ADC 기술 사냥의 신호탄이 됐다. 미국 화이자가 60조원을 투입해 ADC 기업 시젠을 인수하는 등 지난해 글로벌 제약 공룡들이 ADC 기술 확보에 투입한 비용은 160조원에 육박했다. ADC가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으로 이어진 항암 신약에 새 패러다임을 연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이유다.

올해 1월 기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ADC 계열 항암제는 11개다. 2019년 허가받은 엔허투가 지난해 글로벌 매출 3조6000억원으로 1위다. 엔허투는 유방암, 폐암 등 특정 암을 넘어 모든 고형암으로 치료 대상군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후속 신약 개발이 잇따르면서 ADC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조원에서 2033년 40조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란 평가다.

신약 개발에 폭넓게 활용되는 항체는 몸속에 있는 특정 단백질만 찾아 결합할 수 있다. ADC는 이런 항체에 암세포를 죽이는 폭탄 같은 약물을 붙여 만든다.

ADC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암만 찾아가는 ‘선택적 독성’은 ADC 개발 기업에 큰 숙제가 됐다. 2010년대 초반 시젠, 제넨텍, 화이자 등이 ADC 항암제를 개발해 FDA 승인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강한 독성 탓에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미완의 기술’로 평가받았다.

엔허투는 유방암과 폐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20개월 넘게 치료 효과를 입증한 첫 ADC다. 엔허투의 개발 프로젝트명은 ‘운명(DESTINY)’. 고혈압 등 순환기계 치료제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던 다이이찌산쿄엔 ‘운명’을 바꾼 신약이다.

■ 오쿠자와 사장은…

△1962년 10월 일본 출생
△1986년 산쿄 입사
△2017년 다이이찌산쿄 부사장
△2021년 다이이찌산쿄 최고재무책임자(CFO)
△2023년~ 다이이찌산쿄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2025년 4월 다이이찌산쿄 최고경영자(CEO) 취임 예정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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