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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흑백요리사' 모은설 작가 "대결보다 협력의 감동 남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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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끝났지만 불판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최종우승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11만명이나 예약이 몰렸고, 심사위원으로 나섰던 셰프의 인당 70만원짜리 코스요리 티켓은 10분만에 동이 났다. 수십명의 본선 참가자 셰프들 식당은 지금도 발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얘기다. 이 프로그램 덕에 경기침체로 우울함이 감돌았던 외식업계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장 1년 2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된 이 요리 쇼의 모든 과정에는 28년차 ‘방송계 왕고참’ 방송작가 모은설 씨가 있었다. 그는 흑백요리사 메인작가로 제작기간 내내 자존심 강한 셰프들을 설득해 출연을 결정하게 하고 모두가 경쟁의 ‘룰’을 따르게 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28년차 최고참 방송작가의 도전
모 작가는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작업공간에서 기자와 만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게나마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프로그램이 됐다”며 “백수저 스타 셰프들도차 외식업 침체로 힘들다고 할 정도로 불황이 거센 상황이어서 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쇼의 목표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전개된 것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했다. 그는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예상했지만 과정은 전혀 다르게 흘러들어갔다”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요리사들은 질 것이 뻔하더라도 요리 대가와 제대로 진검승부하며 배워가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1라운드를 ‘부전승’ 통과할 수 있는 백수저 요리사들에게는 질시 대신 업계 대선배에 대한 존경을, 동료 경쟁자와는 견제 대신 협력을 택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모 작가의 설명이다.

모 작가는 대학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어린이신문 기자를 했을 정도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기자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1997년 KBS TV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가 인생을 바꿨다. 선배의 권유로 여름방학 때 이 프로그램 아르바이트를 한 것. 그는 “주어진 일을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서 했더니 담당 PD가 작가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방송작가의 길로 접어선 지 올해로 28년째가 됐다” 고 말했다.

그 사이 ‘김승우의 승승장구’ ‘미녀들의 수다 시즌1’ ‘해피선데이’ 등 KBS의 주요 간판 예능프로그램을 도맡았다. 이 공로로 KBS에서 쇼 오락프로그램 부분 방송작가상을 탔다. JTBC에서는 ‘뭉쳐야 찬다’ ‘뭉쳐야 뜬다’ 등의 프로그램이 그의 손을 거쳤다. 방송가에서 ‘일만 하는 왕언니’ 로 통했다.

모 작가는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송작가의 핵심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이라고 짚었다. 그는 “방송 대본은 문학작품이 아니다”라며 “특히 예능은 정해진 결론이 없는 만큼 어떤 미션을 수행하고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몇명이 생존하고 몇명이 탈락하는지 구체적인 룰이 대본에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고 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PD와 출연자에게 설득하고 출연자의 재능을 ‘최대치’로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방송작가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도 흑백요리사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제가 간여한 역대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제작비와 인력이 들었다”며 “출연자를 제외하고도 3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있었다”고 말했다.
○“외식업 침체 도움” 호소…출연자 설득
방송작가 업(業) 의 숙명은 ‘섭외’와 ‘설득’이다. ‘어떻게 저 사람들을 다 한자리에 모았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흑백요리사 출연자 라인업을 꾸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를 필두로 12명나 되는 방송작가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섭외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섭외의 비법에 대해 “왕도는 없다”며 “외식업 침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진심을 다해 설득했다”고 했다. 특히 ‘백수저’ 셰프들은 대부분 공익적 대의명분에 움직였다고. 모 작가는 “백수저 출연자 모두 유명 셰프들이지만 단 한 명도 내 사업이 호황이라고 말하는 분이 없었다”며 “외식업계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들을 대부분 했다”고 했다.

모 작가는 “섭외는 방송 제작진에게만 이득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출연자가 출연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분명 있어야 한다. 서로의 니즈(요구)가 맞아야 하고 출연자의 필요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몫을 더 많이 차지하거나 관철시키기 위해 하는 협상과 토론과는 다른 언어로 설득하는 것이 섭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방송 노출이 많았던 최현석 셰프에게는 ‘진지하게 요리에 임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 을 담겠다고 약속했고, 가장 결정이 늦게 난 애드워드 리 셰프에게는 ‘한국과 한국 요리에 대한 그리움’을 내세워 설득했다. 모 작가는 ‘한국의 젊은 셰프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애드워드 리 셰프의 마음을 돌렸다. 그는 “설득을 하려면 나 자신이 자신감을 갖고 본인의 중심이 잘 서 있어야 하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책임을 지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모 작가와 제작진은 흑백요리사의 ‘공정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0명 백수저가 ‘부전승’으로 본선에 오르는 모습이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 시청자 들의 반발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내부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감동 포인트가 됐다”고 설명했다. 라운드가 진행될 때마다 출연자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이길지 전략적인 행동을 보이기 보다, 지더라도 제대로 대가에게 배우고 싶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2층에서 지켜보던 백수저들도 흑수저 참가자들을 경쟁자가 아닌 업계 후배로 보고 애정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식상하다고 느끼기 쉬운 요리 예능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요리 프로그램은 식재료 준비부터 키친 구성 등 제작비는 꽤 많이 든다. 모 작가는 “그간 비용과 주목도 등의 이유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명맥이 10여년 간 끊겼다”며 “제작비 지원 체계가 기존 방송사와는 전혀 다른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즌 1과 전혀 다른 시즌2 될 것”
이달 초 흑백요리사 종영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 때 가장 질문이 많았던 부분은 ‘시즌2’ 얘기였다. 고든 램지 출연설도 나온다. 모 작가는 이에 대해 “고든 램지는 아직 (시도를) 못했지만 곧 접촉에 나설 예정”이라며 “(출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1이 1년 2~3개월 정도 제작기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시즌2는 내년 하반기나 연말 께 공개를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볼만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영향력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만들게 하자는 취지는 시즌2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성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과 똑같이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제작진이 공감하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명망 있는 시즌제 프로그램의 경우 적당히 시청률이 나오지만 한국 시청자들은 매우 까다롭다”고 말했다. 한국 시청자들이 변화에 빠르고 민감하기 때문에 해외처럼 시즌1의 성공이 다음 시즌의 ‘적당한 시청률’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한국에서 성공한 컨텐츠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현상이 결코 이상하지 않다”며 “글로벌보다 한국 소비자 눈높이가 더 높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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