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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아닌 붓을 든 의사들…"그림은 최고의 치유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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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의사 가운 속에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림은 소통이자 치유의 도구죠.”

흰 진료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와 작업실로 향한다. 물감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화실에서 청진기 대신 붓을 쥔다. 산책하다 마주한 인상 깊었던 풍경을 기억에서 꺼내 정성스레 캔버스에 담다 보면 어느새 적막한 밤중이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그림 그리는 의사들’ 26명의 하루다. 낮에는 의업(醫業)을, 밤에는 화업(畵業)을 병행하는 의사 겸 화가들이다.

한국의사미술회라는 간판 아래 26인의 의사가 병원이 아니라 갤러리에 모인다. ‘그림 그리는 의사들’이라는 전시 제목으로 오는 29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성북동 르한스갤러리에서 올 한 해 그린 작품을 선보인다. 2006년부터 전북 전주와 충남 천안, 울산,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며 19회를 맞이한 나름대로 유서 깊은 전시다. 지난 22일 만난 이강온 한국의사미술회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뒤 출근하고, 또 퇴근하면 밤까지 정말 열심히 그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사미술회는 그림을 통해 환자와 교감을 넓히려는 취지로 2005년 설립됐다. 현재 41명이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아름다운 만남 행복한 동행’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봄 회원들로 구성한 정기전을 연다. 가을엔 그림을 좋아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림 그리는 의사들’ 전시를 열고 있다. 이 회장은 “의업과 화업 중 어떤 게 본업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회원들이 모두 미술을 사랑한다”며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개인전을 연 의사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 회장만 해도 의학박사인 동시에 미술학사 학위가 있다. 울산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울산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며 “의대에 들어가 조금씩 그림을 그렸고 전문의를 딴 뒤 꿈꾸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회원 중엔 미대 석사학위를 취득하거나 국내외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할 정도로 전문성 있는 이가 적지 않다.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대체로 풍경이나 정물, 인물 등을 담아낸 구상회화가 많다. 이 회장은 매일 산책하는 울산대공원 산길을 그린 ‘숲으로부터’ 시리즈를 출품했다. 그는 “아무래도 주위 풍경 등을 주로 그리는 것 같다”면서도 “올해 봄 전시에 참여한 장혜숙 회원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지털아트로 만든 작품을 내는 등 색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작품을 환자들과 공유하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엔 이대서울병원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들을 환자들이 볼 수 있도록 주요 병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병원이 환자에겐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는 공간일 수 있는데, 전시를 열거나 진료실에 그림을 걸면 환자들이 몇 번씩 보러 오기도 하며 위안을 얻는다”며 “그림을 매개 삼아 의사와 환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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