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갑질로 인한 죽음은 순직 처리해주면서, 제 아들은 왜 안 되는 겁니까." 3D프린터를 교육에 활용하다 발병률 0.01%의 희소 암인 육종암에 걸려 숨진 고등학교 과학 교사 고(故) 서울(사망 당시 37살)씨 아버지의 절규다.
서씨는 3D프린터 사용과 암 발병 간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3D프린터를 사용한 두 명의 교사 역시 육종암에 걸려 투병하고 있는데도, '질환의 희소성'을 운운하며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10년 전 교육 현장에 3D프린터를 대대적으로 보급한 정부가 당시 위험성을 안내했던 것도 아니다. "국가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서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오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종합감사에 선다.
"3D프린터 대대적 보급하면서 위험성 교육 안 해"
23일 국회 교육위 소속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실(경기 포천시가평군)에 따르면 서씨의 아버지 서정균(69)씨는 오는 24일 교육위 종합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다. 서씨 부친은 김 의원과 질의응답에서 아들이 생전 3D 프린터를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등을 증언하며 아들의 순직 처리를 촉구할 예정이다. 서씨처럼 3D 프린터를 사용하다 현재 육종암 투병 중인 교사 A씨와 B씨는 김 의원에게 3D프린터 보급 당시 사용 관련 안전관리나 유의 사항에 대한 교육이 전혀 없었다는 점 등을 서면으로 증언한 것으로 확인됐다.3D프린터는 '필라멘트'라는 가느다란 플라스틱을 고온에 녹여 적층하는 방식으로 입체 조형물을 만드는 장치다. 최소 200도의 고열로 필라멘트를 녹이는 과정에서 악취와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데, 이때 발암물질인 나노입자 및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다량 생겨난다. 3D프린터를 하루 6시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담배 360개비에서 나오는 초미세먼지와 같은 양을 흡입하는 셈이라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 결과도 있다.
3D프린터가 국내에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3D프린터를 언급하고부터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3D프린터 활용인력을 2020년까지 1000만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밝히며 학교에도 보급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 현장에서 근무하던 교사들은 "3D프린터의 위험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안내나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육종암 걸린 교사 세 명의 공통점은 '열정적'
김 의원실이 유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씨는 2013년 3D프린터 2대를 직접 구입해 사용을 시작했다. 서씨의 업무는 과학영재부 등을 운영하며 3D프린터 사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생전 3D프린터를 '도깨비방망이'라 칭하며 열정적이었던 그는 4년 2개월간 학교와 집에서 하루 최소 3~4시간을 3D프린터 사용에 쏟았다. 그러던 2018년, 10만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는 희소 암인 육종암에 걸렸고, 투병 끝에 2020년 7월 사망했다.
서씨 말고도 2015~2017년 3D프린터를 사용한 교사 A씨도 2020년 육종암을 피하지 못했다. 2017~2019년 3D프린터를 사용한 B씨도 똑같이 육종암에 걸렸다. 육종암 진단을 받은 세 교사의 공통점은 3D프린터 교육에 '열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3D프린터를 많이 사용한 다른 네 명의 교사는 급성 유방암, 급성 자궁경부암, 상세 불명의 궤양성 대장염 등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등학교 재학 기간 3D프린터를 이틀에 2~3시간꼴로 사용한 한 학생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인과관계 인정 어렵다"…순직 거부한 정부
서씨의 육종암에 따른 사망, 교사들의 육종암 발병, 3D프린터 사용 간에 인과 관계성이 있다고 판단한 서씨 유족은 A씨, B씨와 함께 2021년 2월 인사혁신처에 서씨에 대한 '공무상 재해 및 순직유족급여 청구'를 냈다. 이에 산업안전공단은 인사혁신처의 의뢰로 1년 11개월간 역학조사를 실시했으나, 3D프린터 사용과 암 발병 사이 연관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이후 2023년 4월 인사혁신처는 '순직유족급여 청구 불승인' 결정 통보서를 유족에 보냈다. 한경닷컴이 입수한 통보서를 보면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동 질병(유잉육종)은 굉장히 희귀한 종양으로 현재까지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고,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에도 3D프린터 관련한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는 점, 상병과의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개연성만으로 공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에 유족과 교사들은 2024년 3월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순직유족급여 불승인 처분에 대한 취소'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결국 유족은 2024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 인사혁신처장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김 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씨 사망하자…보급 6년 만에 부랴부랴 대책 마련
2020년 7월, 서씨가 사망한 직후 당국은 급하게 안전 대책을 수립하고 나섰다. 3D프린터 사용과 사망의 인과 관계성을 인정하지 않은 정부가 서씨 사망 직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사망 한 달 뒤인 8월 경기도교육청과 인천시교육청은 3D프린터 사용 시 유의사항을 담은 긴급 공문을 배포했고, 같은 달 교육부는 3D프린터 이용 안전 대책 수립 작업에 착수했다. 또 교육부, 과기부, 산업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3D프린터 기업 121개 사와 교육기관 5754개 학교 등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2021년 교육부는 3D 프린터 이용 시 '10대 안전수칙 및 교육기간 실습실 설치기준'을 마련했다. 보급 7년 만의 일이다. 안전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 가이드라인 기준에 미흡한 학교에는 3D 프린터 실습실 사용을 중지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서씨 유족은 "사망 전후 과정에서 교육부 장관을 면담하고자 서면, 전화, 직접 방문(2회) 시도했지만, 경호원에 제지당해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입증 한계로 업무상 재해 인정 못 받으면 안 돼"
대법원은 2017년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앓게 된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을 깨고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법원은 "희귀 질환의 연구 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증명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해선 안 된다"며 "작업장의 유해 요인 유무,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해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른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었다.
김용태 의원은 이 판례를 들며 "서씨 사망 사건의 경우 사후적으로 밝혀진 유해 물질에 상당 기간 집중적으로 노출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증명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발병 인과관계를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며 "그동안 국가는 업무상 재해 중 질병에 대해 유독 엄격하게 입증 책임을 요구해 왔다. 입증 절차의 한계로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또 교육부가 교원의 공무상 재해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자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하고 있는 '교원 순직 인정 관련 정책연구'에서 '질병'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책연구에서 특히 질병 관련 내용이 면밀하게 분석되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교사와 학생 모두가 안전한 교실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교육부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에서 첨단기술 도입에 따른 신소재 물질이 다뤄지게 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며 "교육부가 서씨 사망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교육 현장에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재해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대책을 가져야 합당한지 숙고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씨는 숨지기 50일 전인 2020년 6월 10일, 학생들과의 모바일 단체 대화방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괜한 걱정일 수 있겠지만, 3D프린터가 출력하는 과정에 좋지 않은 물질들이 많이 나와. 그옆에 너희들을 함께 재운 게 마음에 너무 걸린다. 내가 과학선생님이면서 너무 무식하고 무지했다. 나중에라도 혹시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일찍 가야 한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