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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으로 상속세 첫 납부…객관적 가치평가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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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이슈]


과거 상속세는 극히 일부 부유층에 한정된 관심사였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지속적인 재산 가치의 상승으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거리가 됐다. 특히 고액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의 경우 현금화하기 쉽지 않은 부동산, 주식 등의 형태로 자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실제 상속이 발생하면 납부할 상속세액이 엄청나게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상속세를 납부할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상속세를 납부하려면 보유한 자산을 처분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제값을 받고 처분하기 쉽지 않아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상속세 납부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꾸준히 요구돼 온 미술품 물납제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 관련 법령에는 상속세 납부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로 물납제도를 두고 있다. 물납은 상속세를 현금 대신 부동산 등 현물로 납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렇다고 상속인이면 누구나 물납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부동산과 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이 허용됐다.

그동안 물납할 수 있는 현물을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그 밖에 다른 고가의 자산을 상속재산으로 물려받는 경우 상속세 납부 부담이라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음에도 물납제도를 활용해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경우 중 하나가 현금 자산보다 미술품, 골동품 등 예술적 자산을 많이 보유한 미술품 소장자들이 사망해 상속이 일어난 경우다.

미술품 등 예술적 자산은 전통적으로 감상 가치나 소장 가치로 주목받아 왔으나,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차 투자 자산의 기능도 갖추게 되고, 예술성이나 희소성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미술품 등을 보유하고 있다가 상속이 발생하면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되는 상속재산가액이 엄청나게 커진다. 이는 납부할 상속세가 거액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미술품을 현금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 상속세를 납부할 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전성우 간송미술관 이사장이 부친인 전형필 선생으로부터 많은 예술품을 물려받아 보유하고 있다가 사망하면서 유가족들이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게 되자, 2020년 ‘금동 삼존불 입상’ 등 보물 2점을 경매에 내놓은 일이 있었다.

또한 같은 해 10월경 삼성 이건희 회장 사망 후 보유한 미술품 등의 상속과 관련해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자 유가족들은 고민 끝에 문화재·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하는 방법을 택했다. 상속재산인 미술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기증하는 경우 공공단체에 대한 유증으로 비과세가 된다. 유가족들은 기증의 방법으로 상속세 부담을 다소간 줄일 수 있었으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못한다.

그간 물납 대상 재산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다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미술품 등 예술적 자산도 물납 대상 재산에 포함시키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결국 2021년 말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22년부터 상속세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그 일부를 미술품 등으로 물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정된 상증세법에 따르면,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관련 법령에 따라 지정된 문화유산과 회화, 판화, 조각, 공예, 서예 등 미술품이 물납 가능 자산에 새롭게 포함됐다. 다만, 미술품의 물납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유가증권과 달리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등 물납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허용되므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를 판단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다.

미술품 등을 물납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상속인들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상속재산을 현금화하는 복잡한 절차 없이 상속세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최근에는 개정 법령에 따라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미술품 물납제도가 활성화될 경우 이는 단순히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예술품을 보호하고 보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상속인들이 고가의 예술 작품을 물납으로 제공하면, 그 작품은 국가의 소유가 돼 박물관이나 공공 전시공간에서 전시될 수 있으며, 이는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최대 난제는 미술품 객관적 평가

또한 미술품의 물납은 경제적 측면에서 예술품 시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납제도로 인해 예술적 자산의 경제적 가치가 국가에 의해 인정되고, 활용도가 늘어남으로써 자금력이 있는 애호가들이 예술품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유인이 된다. 반면 상속인들이 세금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미술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면, 가격 변동성을 키워 예술품 시장에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물납제도는 그 대신 작품 자체를 국가에 제공할 수 있으므로 예술품 거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이는 미술품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 미술품 물납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품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미술품의 가치평가에서는 먼저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는데,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한 곳에서는 진품으로 평가한 작품이 다른 곳에선 위작(僞作)으로 나오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미술품의 시장 가치는 시간과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변동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술품의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하면 물납제도를 악용해 상속세를 탈루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고, 반대로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면 물납제도 자체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물납으로 받은 미술품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상속세를 현금이 아닌 현물로 받은 경우 그만큼 국가 세수에 부족이 발생하므로, 그 부족분을 물납으로 받은 미술품을 활용해 보충할 수 있어야만 미술품 물납제도를 둔 명분을 훼손하지 않게 된다.

예술 자산 보호·보존 기회로 활용해야

물납 미술품을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국민에게 문화 향유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형적인 가치도 포함된다. 결국, 미술품이 국가에 납부된 후 적절하게 관리되고 대중에게 공개되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미술품은 경제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 특별한 자산이다. 과거에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고가 미술품의 거래를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으나, 상속세 납부의 수단으로 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상속인들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예술적 자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미술품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가치평가나 사후관리 등의 문제는 남아 있으므로 물납제도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기준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마련돼 집행될 필요가 있다.

전오영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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