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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노벨문학상도 품었다…K콘텐츠 힘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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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간은 한국민에게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상 못한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나라 전체가 잔칫집 분위기였죠. 서점가 ‘한강 코너’에 오픈런이 벌어지고, 수상 소식 직후 한강 소설이 100만 부 넘게 판매되면서 관련 상장회사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해외에서도 한강 책이 품귀 현상을 보이는 등 가히 ‘한강 신드롬’이라 할 만합니다.

영예의 수상자인 한강을 비롯해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한국 작가들이 속속 나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견된 일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결과론처럼 들리긴 하는데요, 아무튼 공통적 반응은 K-팝·K-드라마·K-푸드 등으로 확산 일로인 한류가 이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BTS(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석권 등은 물론, K-푸드와 K-뷰티 등의 인기가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죠. ‘클래식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그라모폰상(음반상)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최근 수상하면서 이젠 K-클래식까지 가세했습니다. 대중문화부터 순수 고급문화에 이르는 문화의 전 장르를 한류가 석권하는 것 같습니다. ‘한류’보다 ‘K-콘텐츠’라고 좀 더 포괄적으로 불러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K-콘텐츠의 힘, 즉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소프트 파워 시대에 콘텐츠 산업이 나라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등을 4·5면에서 들여다봤습니다.
흥미진진 스토리, 융통성 높은 국민성에
민주·시장경제 체제가 원동력 됐어요

K-콘텐츠 인기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국내외 전문가들은 아주 상세한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푸나 주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높은 작품 완성도,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 호감이 가는 캐릭터,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건전함 등을 꼽습니다. 이탈리아 한류 연구가인 피에르 루이지 사코 밀라노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대 교수는 로컬 스토리를 글로벌 관객이 재미있어 할 보편적 콘텐츠로 만드는 능력을 높게 평가합니다. 특히 미국과 서구의 모델을 모방하지 않고도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글로벌 보편성 얻은 한국 이야기

이런 분석을 두 갈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스토리의 힘입니다. 한국인에겐 세계와 공유할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많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역사와 한국민의 삶에서 만들어진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글로벌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킹덤’이 그런 예입니다. 5·18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등을 다룬 한강의 소설도 마찬가지죠. 한국적 특수성이 장르적 보편성과 잘 결합했다고 학자들은 평가합니다.

다음으로 뛰어난 제작 기술·노하우와 홍보·커뮤니케이션의 경쟁력입니다. K-드라마와 영화 등에선 수준 높은 컴퓨터그래픽 등 제작 기술이 동원됩니다. K-팝에선 세련된 사운드, 댄스에 최적화된 비트 등이 귀를 사로잡습니다. 멤버들의 집단 창작(작곡), 국내외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의 지속적 작업 등도 강점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OTT, SNS 등 플랫폼과 만나면서 인기와 팬덤을 더해가는 겁니다.

카를 융 ‘심리 유형’으로 본 한국인

K-콘텐츠의 특별함을 국민성에서 찾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인이 어떤 기질을 지녔기에 한류가 이렇게 인기인지 들여다보는 겁니다. 김성수 일본 센슈대 교수는 ‘한류 파워의 원동력과 K콘텐츠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해서’(2024)란 논문에서 이런 분석을 소개합니다. 출발은 스위스 정신의학자 칼 융입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 유형을 여덟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사람의 태도가 외향형이냐 내향형이냐, 대상을 파악할 때 표면적 특색을 보느냐(감각형) 직관에 따르느냐(직관형), 논리적으로 생각하느냐(사고형) 감정을 앞세우느냐(감정형)에 따라 나눈 겁니다. 요즘의 MBTI와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그런데 일본 출신의 야마구치 미노루 박사는 세계 각국의 국민성을 융의 심리 유형으로 분석한 책을 2017년에 발간합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인은 외향 감각·사고형, 중국인은 외향 직관·사고형, 미국인은 외향 직관·감정형, 일본인은 내향 감각·감정형, 독일인과 스웨덴인은 내향 사고·감각형, 영국인과 이스라엘인은 내향 사고·직관형이라는 식입니다. 한국인은 프랑스인과 똑같이 외향적인 사고형인데, 감각형의 특질도 갖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교수는 사고형의 특성이 잘 나타난 예가 ‘한글’이라고 봅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문자를 논리적으로 만들고 현대에도 통용하는 유일무이한 민족이라는 거죠. 감각형의 속성은 속도감을 중시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중간에 수정해가는 융통성을 갖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의 긍정적 측면이 K-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이어진 겁니다.

노벨경제학상에서 얻는 힌트

마지막으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의 연구 업적에서 또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이들은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잘 정착시킨 나라가 번영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들 교수는 노벨상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한목소리로 한국의 경제발전이 바람직한 제도의 대표적 산물이라며 K-팝·K-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도 한국의 포용적 제도가 가져온 결과라고 강조했습니다. 동아시아의 중국·일본·한국 가운데 자국의 문화콘텐츠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나라는 한국이 가장 늦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킨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란 사실을 세계인은 인정하고 있어요. 이런 기반 위에서 경제와 산업은 물론 문화가 꽃필 수 있었고, 이게 K-콘텐츠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죠.
NIE 포인트
1. K콘텐츠의 기초가 되는 스토리가 다른 나라 콘텐츠에 비해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알아보자.

2. 콘텐츠 산업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를 파악해보자.

3.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와 주장에 대해 좀더 공부해보자.
해외 서점가 휩쓰는 '국문학'의 힘
한류의 질적 도약 이끌 계기 될 듯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과거 고위 관료를 지낸 한 분이 소셜네트워크에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습니다. 2019년에 노르웨이 베르겐을 여행하던 중 한 서점에서 ‘한강 작가 코너’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미 그 시절부터 작가 한강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 대열에 오른 겁니다. 북유럽에 있는 작은 도시가 이 정도라면 세계 주요 도시의 서점가는 두말할 필요 없겠죠? 한국 작가의 책들이 특별한 코너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6월 말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제1회 한국문학 페스티벌’이 열렸는데요, 연기자이자 소설가인 차인표 씨가 초청받아 그의 장편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소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한국문학은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 수상에서도 높아진 관심을 확인할 수 있어요. 작년만 해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천명관의 <고래>(맨부커상 최종 후보), 정보라의 <저주토끼>(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등이 해외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최종 후보에 올랐죠. 메디치상은 공쿠르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한국 작가로는 최초 수상 기록입니다.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 까다롭기로 정평 난 프랑스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받은 사례죠.

한국 문화에 푹 빠진 세계인

이런 분위기는 한류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해외 팬들이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하려는 욕구에서 비롯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K-컬처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다음으로 주목할 분야는 한국문학”이라고 언급한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학까지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은 이전 한류와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순수문학은 한 사회공동체의 역사와 삶, 정신세계가 녹아든 결과물입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의 정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점점 커지는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접하다 보면 이제는 ‘K-콘텐츠’라는 더 넓은 범주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만으로 좁혀서 보면 과거 분단, 일제 침탈, 토속주의 등 한국 역사와 한국적 특수성에서 찾던 작품 소재가 폭력, 젠더, 기후 문제까지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부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 공공과 민간의 노력에 힘입어 전문 번역가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작년까지 5년간 번역원 지원으로 출간된 한국 작가 도서 776종이 해외에서 185만 부 판매됐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 이상 판매됐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도 2018년 일본어로 번역된 이후 일본에서 20만 부가 넘는 등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경제성장 견인차, K-콘텐츠

K-문학의 인기는 한류 성장사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란 느낌을 줍니다. 한류는 1999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에 방영되면서 시작됐어요. 2000년대에 들어선 미니시리즈 ‘겨울연가’가 일본 NHK 등을 통해 상영되고, 드라마 ‘대장금’이 아시아·중동에 이어 아프리카까지 수출되며 큰 인기를 끌었죠. 2010년대엔 장르가 더 다양해지고 작품 완성도도 높아져 미주·유럽으로 한류가 본격적으로 확산됐습니다. 2020년대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망을 타며 더욱 다양한 나라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K-콘텐츠 산업은 명실상부한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되고 있어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연 2% 수준인데, 콘텐츠 산업 매출은 2010년대 이후 연평균 5% 성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수출 효자’ 산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이미 2022년 130억1000만 달러(약 17조7000억원)를 기록하며 2차전지(99억9000만 달러)와 가전(80억5000만 달러), 전기차(98억2000만 달러)를 뛰어넘었습니다. 반도체 수출액이 2005~2022년 4.2배 성장할 때 콘텐츠 수출액은 10배 뛰었죠. ‘넥스트 반도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NIE 포인트
1. 노벨문학상 최근 수상작과 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2. 세계인들이 한류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 체험한 것을 친구들과 나눠보자.

3. K콘텐츠의 장르별 시장 규모를 파악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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