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절반을 지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내몰렸다. 독이 바짝 오른 야당이 올해 국정감사를 계기로 김 여사를 "끝장내겠다"고 엄포를 놨고, 한 몸일 줄 알았던 여당 지도부도 김 여사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버티고 버틴 김 여사 리스크가 이젠 고비를 맞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31일과 내달 1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는 소위 '김 여사 국감'으로 실시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총선 공천 개입,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대통령 관저 공사 수주 의혹' 등 여러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김 여사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증인 명단에 김 여사의 친오빠까지 담겼을 정도다.
이미 야당은 이번 국감을 김 여사를 도마 위에 올릴 적기로 보고 총공세를 준비해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국감 맞이 기자간담회에서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책임을 묻고 끝장낸다는 각오"라며 "이번 국감을 '끝장 국감'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었다.
지난 17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면서 특검 여론에 불이 붙은 것도 리스크다. 여권에서는 검찰의 불기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은 불기소 처분 직후 세 번째 김 여사 특검을 발의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 여사의 모든 죄상을 낱낱이 밝혀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한 몸처럼 움직일 줄 알았던 국민의힘조차 고개를 돌렸다. 10·16 재·보궐선거에서 '보수 텃밭'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7일 회의에서 선거 직후 첫 육성으로 김 여사를 정조준했다.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에서 패배하면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는데, 승리 후 보란 듯이 대통령실을 저격한 것이다.
한 대표는 "김 여사 관련 일들로 모든 정치 이슈가 덮이는 게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김 여사를 향해 △대외활동 중단 △제기된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 △의혹 규명 절차에 적극 협조 등을 주문했다. 특히 규명 절차에 대한 협조를 요구한 대목은 김 여사더러 국감에 출석하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란 해석도 낳았다.
한 대표는 최근 소위 '김 여사 라인', '한남동 라인'이라고 불리는 대통령실 일부 관계자들에 대한 인적 쇄신도 요구했다. 한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 내외를 돕거나 수행했던 인사 중 7명 안팎이 현재 대통령실 비서관·행정관으로 기용돼, 김 여사의 곁에서 직무 범위를 벗어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당내 친한(親한동훈)계도 김 여사를 압박하고 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회의에서 "(재보선 결과는) 김대남·명태균 파동으로 상징되는 김 여사 논란과 지금도 진행 중인 의정 갈등을 국민의힘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뿐만 아니라, 계파색이 옅은 당내 소장파 초선 의원들인 김용태 의원, 김재섭 의원 등 사이에서도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친윤(親윤석열)계 관계자는 "여당이 야당보다 더 김 여사 공격에 열심"이라고 혀를 찼지만, 당내에서는 "버티고 버틴 김 여사의 리스크가 이젠 고비를 맞았다"는 위기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 친한계 인사는 "이젠 악재를 떨쳐야 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에서 김 여사 논란에 대한 유의미한 대책이 나오고 이에 여사도 적극 따라줘야 한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