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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이시바…자민당 승리 이끌까[글로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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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집권 초기 흔들리고 있다. 그가 금리 등에 대해 오락가락 발언하면서 외환·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안보 정책도 논란이다. 10월 27일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정권 기반이 급속히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엔화 급등·닛케이 폭락

무파벌·비주류였던 이시바는 지난 9월 27일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됐다. 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이시바는 10월 1일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과반 표를 얻어 102대 총리에 취임했다.

9월 27일 닛케이지수는 2.32% 오르며 약 두 달 만에 3만9000선을 넘었다. 그동안 금리인상에 비판적이던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가 이날 오후 2시께 나온 1차 투표 결과 1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6엔대로 상승(엔화 가치 하락)했기 때문이다. 엔저는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수출주에 호재다.

그러나 도쿄증시 마감 뒤인 오후 3시 30분께 이시바가 다카이치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총재에 당선되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2엔대로 급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이시바는 그동안 일본은행의 점진적 금리인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올해 ‘슈퍼 엔저’가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일본이 금리를 올려 그 차이가 줄어들면 엔고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엔고에 따라 9월 30일 닛케이지수가 폭락했다. 이날 닛케이지수는 직전 거래일보다 4.8% 하락한 3만7919에 마감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뒤 첫날 거래 기준으로 1990년 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시장에선 ‘다카이치 트레이드의 역회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다카이치의 승리 전망에 따른 ‘엔화 약세·주가 상승’ 트레이드가 이시바 당선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시바가 선거 기간 금융소득 과세 강화 뜻을 나타낸 것도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시바는 “금융소득 과세 강화는 실행하고 싶다”며 “(과세 강화로) 부자가 정말 해외로 나가버릴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금융소득세율은 일률 20%(소득세 15%, 주민세 5%)인데 이시바가 누진제를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비둘기로 돌아선 이시바

시장이 요동치자 이시바는 한발 물러섰다. 10월 2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취임 후 처음 만난 뒤 “개인적으로 추가로 금리를 올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우에다 총재에게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통화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소득 과세 강화에 대해서도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로 대표되는 ‘저축에서 투자로’의 흐름은 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바가 ‘금융 완화’ 유지로 돌아서면서 10월 3일 시장이 크게 환호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3엔가량 상승(엔화 가치 하락)하며 달러당 146엔대에서 움직였다. 엔저로 도요타 등 수출주에 매수세가 몰리며 닛케이지수는 전날 대비 1.97% 오른 3만8552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에선 이르면 12월 추가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해왔지만 내년 1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시아판 나토는 비현실적

이시바는 선거 기간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에도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에 나토 같은 집단적 자위 체제가 존재하지 않고 상호 방위 의무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쉽다”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핵 연합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무기를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나 핵 반입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는 일본 정계에서 대표적인 안보통으로 꼽힌다. 방위상을 역임한 그는 방위 문제에선 오타쿠로 불릴 정도다. 그는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본인 포함 20명 중 4명이나 방위상 출신으로 꾸렸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나카타니 겐 방위상,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이 모두 과거 내각에서 방위상을 거쳤다.

그러나 이시바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평화 헌법과도 어긋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핵 공유나 핵 반입은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결국 이시바 내각은 아시아판 나토 창설도 일단 유보했다. 이와야 외무상은 10월 2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아시아판 나토 구상과 관련해 “미래의 아이디어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을 들여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즉시 상호 간 방위 의무를 지우는 기구를 아시아에 설립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이시바 흔들기 시작되나

집권 초기 국정 운영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시바 내각 지지율도 기대만큼 높지 않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보다는 크게 올랐지만 역대 정권 출범 직후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10월 1∼2일 18세 이상 유권자 10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51%였다. 9월 13∼15일 집계된 기시다 내각 지지율(25%)보다는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 조사 기준으로 2009년 이후 15년 동안 새 내각이 발족했을 당시 지지율 중 가장 낮다.

이후 지지율은 더 떨어지는 모습이다. 교도통신은 10월 12~13일 126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이 1∼2일 조사보다 8.7%포인트 낮은 42.0%였다고 보도했다. NHK가 10월 12∼14일 2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44%였다. 이 지지율은 3년 전인 2021년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시 지지율인 49%와 비교해 5%포인트 낮다.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강한 순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자민당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한국에선 아직 이시바에 대한 호감이 크다. 그가 한·일 역사 문제에선 온건한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 8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이후 블로그에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는 그동안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참배하지 않았다. 10월 10일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우려되는 것은 오히려 이시바 총리에 대한 한국의 큰 기대다.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실망은 더 크다. ‘반일 몰이’ 세력이 가세하면 실망은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이시바 총리에 대한 한국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면 가장 반길 사람들이 옛 아베파다. ‘역시 우리가 맞았다’며 우경화로 내달릴 가능성이 높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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