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과 유물의 세계는 신비롭지만 동시에 관객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역사와 고미술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국보급 유물은 예약하고 기다려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고미술과 국보, 그리고 보물을 밟고 만지며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통해서다. 전시 제목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움을 지나 빛나는 광복을 맞이한 기쁨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출범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미디어아트 특별전이다. 전시 준비에만 3년이 걸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1360㎡(약 411평) 대형 공간을 털어 미디어아트 공간으로 꾸몄다. 미술관이 소장한 국보와 보물, 주요 작품 99점을 디지털화해 탄생시켰다. 공간 8개와 통로 2개를 포함해 10개의 공간을 미디어아트로 채웠다.
먼저 미로처럼 이어진 전시 공간을 걷다 보면 훈민정음 창제의 순간을 미디어아트로 재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글자의 탄생을 마치 우주에서 빅뱅이 일어나는 것처럼 표현했다. 한가운데엔 훈민정음 해례본이 놓였다. 실제 유물을 둘러싼 대형 화면에선 한글 자음과 모음이 끊임없이 폭발하고 또 사라진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현한 공간에서는 신윤복의 관점으로 공간을 시작한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미인도를 그렸는지 그 길을 되짚어본다. 공간을 마치 혜원 신윤복의 마을로 들어가는 과정처럼 구성했다. 단순히 ‘미인도’ 한 작품뿐만 아니라 해학과 풍자의 그림을 그려온 작가의 일생을 되돌아볼 수 있다.
정선의 작품 ‘금강내산’을 다룬 공간은 정선이 30대와 70대에 두 번 금강산을 그렸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같은 사람이 30년 간격으로 어떻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곤 300년 뒤 연출과 기술로 다시 한번 금강내산을 재현했다. 정선이 수묵화가 아니라 유화로 그림을 그렸다는 상상을 기반으로 공간과 미디어를 제작했다.
전시는 당시 정선이 금강내산을 그리기 위해 직접 금강산을 찾아갔다는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선이 실제 갔을 법한 금강산 여정을 재현했다. 관객이 실제 가볼 수 없는 금강산을 영상을 통해 만끽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공간은 관객의 동선과 액션을 인식해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관객이 작품 안으로 개입하게 했다. 관객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거나 영상이 바뀌는 등이다.
특별한 점은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 향기까지 들여왔다는 것이다. 전문 조향사들이 관마다 작품과 영상 연출에 맞춰 향기를 만들었다. 추사 김정희의 방으로 이어지는 골목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수선화 꽃길과 함께 꽃향기가 공간을 감싼다. 위에 설치된 장치에서는 꽃잎이 떨어진다. 이 밖에도 짚 영상을 밟을 땐 짚 향기를, 서예 작품을 볼 땐 먹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간송미술관의 이번 도전은 고미술이라는 영역이 주는 어려움을 탈피하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는 취지로 이뤄졌다. 다만 2만원이라는 입장권 가격에도 불구하고 원화나 옛 유물을 볼 수 없는 건 아쉽다. 전시는 내년 4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