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서비스업체에서 위탁받은 새벽배송 업무를 하다 사망한 운송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상당한 지휘·감독 등이 인정되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사망한 운송기사 A씨의 배우자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2년 1월 C운수업체와 운송계약을 하고 1t트럭을 분양받았다. 그는 이 트럭으로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D사의 세탁물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개인 소유 차량으로 용역을 제공하는 지입계약을 운수회사와 맺고 이 회사에 위탁된 업무를 대신하는 이른바 지입제 기사였다.
A씨는 2022년 6월 새벽에 트럭을 운전하다 경기 파주의 한 미개통 도로에 주차된 중장비를 추돌하는 사고로 사망했다. B씨는 유족급여 등을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을 회사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법원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고인의 운송 물량·일정·지역 등을 지정하는 등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결정했다”며 “고인이 운행한 트럭은 실질적으로 회사 배송업무에 전속된 차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업주인 점에 대해서는 “이런 사정은 실질적인 노무 제공 실태와 부합하지 않거나,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고인의 근로자 지위를 뒤집는 사정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외관상 개인사업자인 지입차주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대법원은 올해 1월 운수업체와 지입계약을 맺고 문서 파쇄 대행업체에서 위탁받은 업무를 하다 상해를 입은 지입기사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1·2심을 뒤집고 원고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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