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지난 9월 13일 고려아연·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촉발된 경영권 분쟁 사태가 34일째에 접어들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최윤범 고려회장 측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향후 지분 추가 매입 경쟁과 주주총회 표 대결 등 갈등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경영권 분쟁 장기화에 따라 고려아연 경쟁력 약화와 산업계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연은 물론 희소금속을 생산하는 고려아연의 글로벌 공급망 역할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려아연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와 진행하던 수천억원대 니켈 공급 계약이 성사 직전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권 분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잠재 고객사들이 대규모 계약 체결에 부담을 느낀 결과로 추정된다.
온산제련소 핵심 기술인력 이탈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핵심 기술진들은 지난 9월 24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K파트너스의 인수 시도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경영권이 MBK에 넘어가면 핵심 기술도 중국에 넘어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핵심 기술진은 모두 퇴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은 "국내 핵심 희소금속을 다루는 주요 기술진이 해외 경쟁사로 옮길 경우 부정적 영향은 가늠하기 힘들 것"이라며 "적대적 인수·합병(M&A)은 산업계의 생존이자 실존의 문제"라고 밝혔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납), 은, 구리 등 비철금속 외에 희소금속 생산과 공급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희소금속이란 자연에 소량만 존재할 뿐 아니라 채굴이 쉽지 않지만 높은 가치를 지닌 금속을 가리킨다. 희소금속은 중국 등 일부 국가만 생산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이외의 국가들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산업계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측면에서 희소금속 공급망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희소금속의 공급망을 대부분 장악한 중국이 수출 통제 품목을 계속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통제를 더 확대할 경우 국내 산업은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은 전세계 광산에서 들여온 아연 및 연 정광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정광 내 극소량의 희소금속을 추출해 제품화했다.
제련 기술력에 기반한 독보적인 희소금속 추출 기술을 바탕으로 아연 및 연을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에서 각종 유가금속을 회수한다. 이 기술을 통해 고려아연은 인듐과 카드뮴, 텔루륨, 코발트 등의 희소금속을 생산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전 세계 인듐 공급량의 약 11%를 담당하고 있다. 인듐은 아연을 추출하는 과정의 부산물로 얻어진다. 고려아연은 국내 인듐 시장에서 거의 유일한 공급 업체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듐은 다른 금속에 미량만 첨가해도 금속의 성질을 크게 바꿔 '금속 비타민'이라 불리며 TV, 컴퓨터 모니터 등 전자 디스플레이의 생산에 필수적이다. 태양광 패널과 LED 등 각종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로도 쓰인다.
전기차 양극재의 핵심소재 중 하나인 코발트도 고려아연의 주요 생산품 중 하나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 정관 내에서 극소량의 코발트를 뽑아낸다. 코발트는 배터리 수명을 좌우하는 2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소재다. 전 세계 코발트 광물의 70%가 콩고에 쏠려 있는 가운데 2020년 기준 콩고 코발트 광산 19개 중 15개가 중국 소유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코발트 부족 현상이 초래되기도 했다. 현재 코발트는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호주, 인도, 영국 등 지역에서 핵심 광물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희토류 등 희소금속 대부분의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은 미중 무역갈등 이후 주요 광물자원뿐 아니라 추출하고 분리하는 기술까지 반출을 막는 자원 무기화 전략으로 세계 생산량을 좌우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희소금속 수출제한 확대와 맞물려 국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정성이 증대될 것"이라며 "중국이 2021년 요소 수출을 중단하면서 촉발된 '요소수 사태'처럼 국내 산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