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에 있는 한 반도체 공장은 황당한 소방 규제 탓에 골머리를 앓았다. 건물 2층부터 11층까지는 소방관이 사다리를 이용해 진입할 수 있도록 창을 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 공장은 큼지막한 반도체 설비를 들여놓기 위해 1개 층을 8m 높이로 지었다. 일반 건축물(3m)의 세 배에 달한다. 11층까지 높이는 80m로, 국내에서 가장 긴 70m 소방 사다리를 다 펴도 진입할 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국민 생활에 불편을 안겨주는 불합리한 규제 10개를 15일 공개했다. 대한상의가 운영하는 규제투자애로접수센터에 제출된 규제를 대상으로 온라인 소통 플랫폼 ‘소플’을 통해 투표에 부쳤다. 지난달 30일부터 3일간 국민 446명과 기업 관계자 731명 등 모두 1177명이 참여했다.
1위는 ‘소방 사다리가 닿지 않는 고층에 적용한 진입 창 의무설치 규제’였다. 응답자의 74.6%가 반드시 고쳐야 할 규제로 꼽았다.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라는 이유에서다. 참여자들은 건물 내부에 비상용 승강기를 두는 등 다른 형태의 안전조치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2위는 ‘공장에 빈 땅이 있는데도 주차장을 설치하지 못해 인근 국도를 이용하는 사례’였다. 71.7%가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인근에 농림지가 있어 관리가 필요한 ‘생산관리지역’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 목록에 주차장이 빠졌기 때문이다. 국토계획법은 주택, 판매시설, 근린생활시설 등 20여 개만 지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 목공소나 생수 공장을 구축해도 유휴부지를 주차장으로 쓸 수 없다.
기업 활동과 투자를 가로막는 ‘토지 이용 규제’도 재검토가 필요한 규제로 꼽혔다. 공장을 세울 때는 별다른 규제가 없었는데, 이후 해당 지역이 토지 이용 규제 대상이 되면 증설할 때 과도한 부담금을 기업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견기업이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배정받을 수 없는 문제,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등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민 불편을 유발하는 규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로당에 가스레인지를 설치하는 비용이 일반 가정보다 최대 다섯 배 높은 게 대표적이다. 도시가스사업법상 지방자치단체가 경로당을 건설할 경우 공사 규모와 관계없이 대형 업체를 통해 가스시설을 설치해야 해서다. 이 밖에 보편화한 자동차 소프트웨어 원격 업데이트(OTA) 불법화 등도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로 지목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