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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크게 칭찬함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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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저녁 8시가 막 지나 스웨덴 한림원은 한국 작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공표했다. 저 대륙 건너에서 발화된 그 공표가 외신으로 날아든 그 순간,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의 이름이 낯선 발음으로 호명되는 그 찰나,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고 의심했다. 한국문학의 묵은 염원이자 숙원이 이렇게 이루어지다니! 이게 허무한 거짓말 같고 비현실의 일인 듯 아득했다. 이것이 꿈이라면 나는 이 몽환적 행복에서 빨리 깨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놀라움

스웨덴 한림원의 마츠 말름 사무국장은 한강 작가가 수상 소식을 들은 그 순간 아들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고 전했다.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있을 때 작가는 간결한 수상 소감을 밝혔을 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작가는 미디어와의 기자회견을 마다하고 평범한 일상의 질서에 깃든 고요 안에서 표표했을 테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 세계에 휘몰아친 한강 신드롬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위력은 메가 태풍에 견줄 만큼 거대했다.

우리 중 아무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예견한 이는 없었다. 그 충격은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지만 그 충격은 이내 기쁨과 열광으로 바뀌었다. 우리 모두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찬사를 받은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원서로 읽게 된 사실에 감격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등을 구매해 간직하려는 인파로 서점은 북적이고 책들은 반나절 만에 동이 났다. 출판사의 긴급 중쇄 발주로 인쇄소들은 한강의 책들을 인쇄하느라 밤샘 작업 중이라고 미디어들은 전한다.

한강은 강렬한 주제 의식, 통념을 깨는 이미지들, 파닥이는 언어들, 돌출하는 판타지로 직조한 소설 <채식주의자>로 먼저 세계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질곡의 역사와 야만적인 폭력에 눌린 여성의 저항을 담은 이 작품이 2016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거머쥔 게 계기였다. 여주인공이 육식에 반응하는 구토와 자해 같은 행위는 생명을 수탈하는 무자비함에 대한 거부를 함의한다.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폭력은 남성, 가부장제, 권력의 주류에서 나오고, 희생은 상대적으로 나약한 여성, 소수자, 비권력자의 몫이다. 작가는 희생자의 몸에 각인되는 폭력이 올바름을 상실한 권력과 권력의 속성인 무자비함에서 비롯되었음을 폭로한다. 육식에 항거하다가 나무로 바뀌는 기괴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은 가부장제의 반생명적 억압에 대한 식물적 분노를 담아낸 것이다.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다"

나는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한강은 제 언어가 삶의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끌어내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의 언어는 늘 “심장 속, 아주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곳. 전류와 비슷한 생명의 감각이 솟아나는 곳”을 겨눈다. 그의 언어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이고, 내밀한 사유와 생명의 감각, 형태가 없는 이미지와 상상력을 하나의 현전으로 드러낸다. 이뿐만 아니라 사적 서사를 넘어서서 집단 무의식을 표현하고, 점처럼 흩어진 약한 존재들을 잇는 매개이자 비밀과 진실을 캐어내는 도구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가는 광주항쟁과 제주의 4·3 같은 역사의 질곡에 참혹하게 베이고 으깨진 희생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약자들의 내면적 훼손과 트라우마를 응시하며 그게 어떻게 치유되는가를 통찰한다. 한강의 시적 통찰의 언어는 회복과 치유의 언어, 무구한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의 언어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강의 소설은 훈련받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은 작가가 줄곧 주류의 질서를 거부하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들은 폭주하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끔찍한 죽임을 당한 약자, 소수자,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이어져 있다. 그 잇대임의 방식이 전근대의 양식인 리얼리즘보다는 서정적 부드러움과 낯선 판타지의 힘에 기댄다는 점에 특이점이 분출한다.

변방의 언어에서 중심의 언어로

나는 문학 강연에서 종종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날이 머지않다는 희망적 전망을 전하고 김혜순, 이승우, 한강 같은 작가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어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만큼 한국문학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질적 성취가 이미 세계 문학의 수준을 넘본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강이 품은 노벨문학상은 그의 소설들이 높은 문학성과 날카롭게 벼린 윤리적 감각을 융합하며 세계성을 획득한 사실에 대한 공적 인증일 것이다. 그것이 작가 개인과 가족의 보람이고 영광이자 한국문학 전체에 쏟아진 찬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강 작가가 이룬 미학과 상상력이 한국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은 변방의 언어인 한국어를 변방의 언어에서 중심의 언어로 견인한다. 제 문학을 단박에 세계 작가의 반열에 올리고, 한국문학도 세계 문학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했다. 한강 신드롬으로 촉발된 한국문학 열풍이 우리 작가들을 지지하는 온기로 고루 퍼지길, 그리고 우리 각박한 사회에 독서 신드롬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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