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차륜형 자주포의 청사진이 최근 국내 방산 박람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국제 방산시장에서 차륜형 자주포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도 본격 수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국산 모델의 상용화는 2030년 대로 예상되고 있어 '너무 늦어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 자주포 시장은 강한 방호력으로 전방 지역에서 활약하는 '궤도형'과 빠른 기동성이 선호되는 '차륜형'으로 뚜렷하게 양분화되고 있어, 국내 방산업계도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한화, '차륜형' 2027년 체계개발 완료
지난 2~5일 충남 계룡시에서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 전시회(KADEX) 2024'가 열렸다. 여기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무인 포탑을 탑재한 155㎜ 차륜형 자주포 모형을 공개했다. 모형은 K9A2 자주포에 적용되는 무인 포탑과 차체 플랫폼을 결합한 형태다. 공개된 목표 성능을 보면, 포탑 크기(포신 제외)는 4.2m(길이)×2.9m(폭)×2.0m(높이)이고, 주 무장으로 155㎜ 52구경장(포신 길이/포 구경) 포신을 사용한다. 현재 K9A3용으로 개발 중인 58구경장도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분당 8발을 쏠 수 있다. 전투중량은 38t 이하, 승무원 두 명, 사거리는 40㎞(표준탄 기준)로 계획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한화의 '차륜형 자주포 개발안'을 보면, 이번 차륜형 자주포 사업의 예상 개발 비용은 414억원이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주관의 '무기체계 개조개발 지원 사업'을 통해 기업 부담을 50% 가량 낮출 계획이다. 올해 이 사업에 선정될 경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 1월부터 2027년 6월까지 모두 30개월간 체계 개발에 나선다. 1단계로 K9A2 자동화 장치를 활용한 '무인 포탑'을 만들고, 2단계로 천무 등 차체를 개보해 무인 포탑용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다.
세계 자주포 시장의 '베스트 셀러'인 K9을 만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기존의 궤도형 대신 차륜형을 택한 것은 지난 4월 영국이 K9A2를 제치고 독일의 차륜형 자주포 RCH-155가 선정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차륜형의 개발 필요성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기동성·생존성이 증가된 차륜형 자주포의 필요성이 커졌다"며 "자주포 시장 양분화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전쟁) 접경지역 국가들은 방호력이 좋은 궤도형 자주포를 주로 선정하지만 후방국들은 신속한 병력 전개에 유리한 차륜형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경우 광대한 영토에 비해 포병 숫자가 부족해 체코제 차륜형 자주포인 '다나'가 전장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는 평가다. 또 독일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RCH-155 36문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2030년대 상용화…"향후 장갑 등 스펙 더 높여야"
한화는 차륜형 자주포를 개발한 뒤 미주·중동·유럽시장 수출까지 연결시키겠다는 목표다. 수출 시장에서 새 자주포의 경쟁자로는 영국에서 선정된 KNDS사의 RCH-155, 라인메탈이 개발 중인 HX-3(시그마 155) 차륜형 자주포 등이 꼽힌다. 두 모델은 현재 독일 육군의 '미래 중거리 간접사격체계' 사업의 후보로 올라와 있다. RCH-155는 독일의 복서 장갑차에 KNDS가 개발한 무인 포탑을 얹은 형태로, 이미 상용화돼 쓰이고 있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포탑은 K9의 강력한 경쟁제품인 'Pzh-2000' 자주포 포탑을 무인화한 것이어서 강력한 화력을 갖고 있다.
다만 향후 해외수출 수주경쟁에선 RCH-155보다 HX-3가 한화 자주포의 유력 경쟁자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HX-3는 이스라엘의 엘빗시스템이 개발한 '시그마' 포탑을 사용하는데, RCH-155의 포탑보다 커서 탄약 40발을 탑재할 수 있다. RCH-155가 30발 정도 가능하고, 신형 한화 자주포는 40발 정도 탑재를 목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력면에서 HX-3가 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차세대 자주포의 진짜 문제는 '개발 시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ADEX에서 만난 한화 관계자는 "2030년 대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연구위원은 "RCH-155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차륜형 자주포 개발이 이미 실용화 단계에 있어 한국이 한발 늦은 편"이라며 "차기 차륜형 장갑차에는 한화의 '타이곤' 장갑차를 활용한 방어력 강화, 유무인 복합체계 등을 추가해야 수출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KADEX에선 K9의 차륜형 외에 K9A2의 후속형인 이른바 'K9A3' 자주포 모델도 등장했다. K9A3는 유·무인복합체계를 적용돼 지휘장갑차(FDCV) 두 대가 수km 떨어진 거리에서 무인의 K9A3 자주포 여섯 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이다. 한화 관계자는 "지휘차량에는 11명이 탑승하는 반면, K9A3에는 무인 혹은 한 명만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신은 58구경장까지 늘려 최대 사거리가 80㎞로 연장된다. 분당 발사 속도도 10발 이상으로 계획 중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