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그룹이 올해 창립 70주년, 지주사 체제 1년을 맞아 철강 본업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확장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최근 컬러강판 4위 업체인 아주스틸 인수를 추진 중인 가운데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동국인베스트먼트를 공식 출범하며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변화를 통한 성장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은 오너 4세인 장선익 전무다. 장세주 동국홀딩스 회장의 장남이다.
동국제강그룹이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굳건한 ‘형제경영 체제’로 돌아가는 만큼 아직 장 전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그룹의 굵직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어 승계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수업만 18년…아주스틸 인수전서 존재감
동국제강그룹은 지난 8월 컬러강판 업계 4위인 아주스틸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 주체는 그룹 냉연철강 계열사인 동국씨엠이다. 동국씨엠은 총 1285억원을 투입해 아주스틸의 지분 56.6% 확보에 나섰다. 연내 기업 실사, 본계약, 기업결합 승인 등 절차를 밟고 아주스틸을 계열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1995년 설립된 아주스틸의 컬러강판 연간 생산능력은 42만 톤 규모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컬러강판을 납품하는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알짜 회사다. 2021년 상장 후 자본적 지출(CAPEX)에 집중해 구미·김천공장을 비롯해 폴란드·멕시코 공장 등 국내외 생산거점에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이 회사는 시황 부진과 대규모 설비투자의 영향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아주스틸은 2022년에 비해 매출액(1조526억원)이 10.6% 줄어든 9446억원, 영업이익 133억원, 순손실 392억원을 기록했다. 동국씨엠이 신규 설비 투자가 완료된 업체를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했고 동종업계와 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동국씨엠은 아주스틸 인수로 생산 원가 절감, 구매력 강화, 재무 안정화, 폴란드 및 멕시코 생산거점 확보를 통한 수출 기회 확장, 방화문 및 엘리베이터 도어 등 컬러강판 B2C 사업 역량 강화 등의 시너지가 예상된다.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동국씨엠은 글로벌 컬러강판 시장점유율이 기존 29.7%에서 34.4%로 늘어나 글로벌 1위 컬러강판 기업이 된다. 내수 시장점유율(30.6%) 역시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알짜 회사를 인수하는 데에는 장선익 전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장 전무의 부사장 승진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동국제강그룹은 CVC인 동국인베스트먼트를 최근 공식 출범했다. 동국인베스트먼트는 인공지능(AI) 기술 분야를 비롯해 동국제강, 동국씨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철강업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투자에 중점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연내 ‘미래성장 소부장 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최근 재계에서는 오너 2~4세들에게 CVC를 맡겨 미래 성장동력 발굴 임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산업 트렌드와 투자 감각, 인수합병(M&A) 등의 경영 실무 업무를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 전무의 CVC 참여 여부와 향후 승계 구도에서 동국인베스트먼트 활용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친환경 공법에 관심…“실무 더 배울 것”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의 장남인 장 전무는 부친과 숙부 장세욱 부회장 아래서 18년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2007년 동국제강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있다. 초고속 승진으로 단숨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는 또래의 후계자들과 대비되는 ‘정중동’ 행보다.
장 전무는 전략경영실을 거쳐 미국·일본 법인에서 경험을 쌓고 2015년 귀국해 신설 조직 비전팀 리더로 그룹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입사 10년 만인 2016년 처음 임원으로 승진했고 2018년 경영전략팀장으로 그룹 전반의 경영 방향성을 확립했다. 동국제강을 비롯해 인터지스, 동국시스템즈, 페럼인프라 각 계열사 사업 현황 및 주변 환경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수립했다. ‘중기경영계획 수립’과 ‘ROA(총자산순이익률) 지표 도입’은 그의 대표적인 업무 성과다.
2020년 12월에는 현장에 투입돼 인천공장 생산담당 임원으로 생산부문을 총괄했다. 장 전무가 현장 생산을 총괄한 2021~2022년 동국제강은 10년래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인천공장은 장세주 회장이 경영수업을 받는 동안 두 번이나 거쳐 갔을 정도로 오너일가에게 상징적인 곳이다.
장 전무는 2022년 12월 정기인사에서 승진과 함께 동국제강 구매실장에 임명됐다. 철강 제조업은 원가 비중이 높아 원자재 구매 역량이 곧 수익성과 직결된다. 장 전무는 구매실장으로서 기존 파트너사들과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며 원가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철 스크랩, 슬래브 등 제한된 원재료 시장에서 공급망 확충을 위해 주변국 메이저 고로사들과 공급망 협약을 이끌었다. 장 전무의 활동이 회사 보도자료 등에 공식적으로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틈틈이 해외 포럼과 전시회를 방문하며 주요 설비 메이커와 소통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무는 탄소중립 전환기를 맞이한 철강산업에서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탄소 저감 설비 및 친환경 제조 공법 관련 공부에 매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 전무는 지난해 동국제강 인적분할 임시주주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행보에 대한 질문에 “회사가 결정할 부분이지만 가능하다면 영업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다”며 “실무에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유력 후계자에게 장기간에 걸쳐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동국제강그룹만의 전통적인 승계 원칙이다. 동국제강그룹은 전통적으로 오너일가가 회사에서 2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는데 말단 사원에서부터 시작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현장 실무 경험을 두루 쌓도록 한다.
장세주 회장도 1978년 사원으로 입사해 경리부, 일본지사 차장, 인천공장장, 영업본부장, 기획실장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거친 뒤에야 22년 만에 대표이사에 오른 만큼 유력 후계자인 장 전무도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
장세주 회장은 부친 장상태 명예회장으로부터 23년간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장 전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향후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세 중 유일하게 경영 참여…지분 확보 과제
장 전무가 차분하고 우직하게 경영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있지만 향후 안정적 승계를 위해선 지분 확보가 필수 과제다. 지주사인 동국홀딩스 지분은 장세주 회장 32.54%, 장세욱 부회장 20.94%, 장선익 전무가 1.42%를 들고 있다.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을 앞두고 4세들에게 수십억원대의 지분을 증여했다. 장세주 회장은 지난해 3월 장남 장 전무와 차남 장승익 씨에게 각각 20만 주, 10만 주를 증여한 바 있다.
같은 시기 장세욱 부회장도 자녀 장훈익 씨와 장효진 씨에게 각각 35만 주를 증여했다. 장 전무가 오너 4세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승계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최근 재계에서 오너가 친족 간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지분율 격차 등이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으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안정적 승계 구도 확립을 위해 지분 확보 등을 통해 향후 승계구도에서의 변수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