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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ing girling" 영어 쏟아지자…오히려 뜨는 '한국어 가사' [연계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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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da da da da / All the girls are girling girling / All the girls are girling girling (르세라핌 '크레이지')
This time I want / You You You You like it's magnetic / U U U U U U U U super 이끌림 (아일릿 '마그네틱')
더 Hit the Klaxon / Hon hon hon hon hon hon / 또 Hit the Klaxon (여자아이들 '클락션')
Su su su Supernova / Nova / Can't stop hyperstellar (에스파 '슈퍼노바')
Ya don't you know how sweet it tastes / How sweet it tastes (뉴진스 '하우 스위트')

국내외 음악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K팝 그룹들의 인기곡 후렴이다.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에 일부 단어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강한 중독성을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곡의 핵심 구간인 후렴을 대부분 영어 가사로 채웠다는 점이다.

해외 진출 공략에 불이 붙고, 다양한 국가의 팬들을 흡수하면서 K팝 곡에서 영어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써클차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여성그룹 노랫말 중 영어 가사의 비중은 41.3%, 남성그룹은 24.3%로 5년 전과 비교해 각각 18.9%, 5.6% 증가했다. 외국인들의 청취 장벽을 낮추고 'K팝'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영어 버전을 별도로 발매하는 일도 흔해졌다.


영어 홍수 현상이 짙어지자 국내에서는 역으로 한글로 이루어진 곡이 화제가 되고, 이에 호감을 나타내는 경향이 생겨났다.

플레디스엔터테인트 신인 투어스(TWS)는 대부분 한국어로만 이루어졌던 데뷔곡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에 이어 '내가 S면 넌 나의 N이 되어줘'에서는 일부 추임새를 제외하고는 전부 한글로 채웠다. 국내 팬들은 "가사에 한글 많은 거 좋다", "한글로 꽉 채운 가사 감동이다", "별 의미 없는 영어 가사만 보다가 의미가 확 와닿으니 좋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국어 가사로 곡의 의미가 또렷하게 전달되니 전체적인 분위기와 콘셉트까지 더 효과적으로 느껴지고, '말맛'이 제대로 살아났다는 평가가 따랐다.

아이브 또한 한국적인 요소를 부각한 '해야'를 통해 호평을 얻었다. 해를 사랑한 호랑이 설화를 새롭게 해석해 한글 가사로 곡을 꽉 채웠고, 곰방대·저고리·부채·노리개 매듭 등의 의상과 악세서리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 음원차트를 장악한 데이식스의 경우 곡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글 가사로 탄탄하게 노래하는 팀이다. 역주행 기적을 일으킨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비롯해 신곡 '녹아내려요'와 전작 '해피', '웰컴 투 더 쇼'까지 전부 영어 가사는 필요에 의해 극소수만 쓰였다. 데이식스의 인기 요소로 꼽히는 게 바로 곡이 지닌 내용이다. 이들이 전하는 위로와 공감의 가사들은 과도한 장치 없이 한국인 정서에 꼭 들어맞는다.

또 다른 음원 강자 QWER도 마찬가지다. '고민중독'에 이어 신곡 '내 이름 맑음'에도 영어가 아예 없다. 대신 화자의 상황과 심경이 세밀하게 표현돼 마치 한 편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듯하다. '꾹꾹 참고', '꼭꼭 숨겨서', '퉁퉁 붓고', '꼬깃꼬깃 구겨' 등의 의태어로 가사적 측면에서의 중독성을 만들어냈다. 곡이 지닌 깨끗한 느낌이 더 순수하게 잘 전달된다는 평이 나온다.

명반으로 거론되고 있는 NCT 도영의 솔로 앨범 '청춘의 포말'에 수록된 곡들도 가사의 매력이 유독 돋보인다. 도영이 처음으로 단독 작사한 '새봄의 노래'를 비롯해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한글로 표현돼 마치 '청춘'을 그린 한 편의 책을 읽는 듯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각 곡이 유기적인 흐름을 갖는 데 멜로디와 함께 가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의 성과보다는 음악적 요소에 더 욕심을 내서 얻은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직접 곡을 쓰는 가수들의 경우 한 글자 한 글자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잔나비는 마치 시를 읽는 듯한 감성적인 표현력과 꾸밈 없는 작법을 구사해 '가요계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 남몰래 펼쳐보아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 또다시 찾아오는 / 누군갈 위해서 / 남겨두겠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이대로 이대로 /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 노를 저으면 그 소릴 난 들을래 / 쏟아지는 달빛에 / 오 살결을 그을리고 / 먼 옛날의 뱃사람을 닮아볼래 / 그 사랑을 ('외딴섬 로맨틱')

가사만으로 뭉클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는데 멜로디까지 더해지면 한 마디로 환상적이다. 최정훈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속 가사 '쉬운 마음'을 언급하며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친구들, 우리 음악을 모르는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기본적인 애티튜드"라며 "쉽고 친절한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이유는 '사랑히', '세로질러', '연구름', '꽃갈피' 등 기존에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걸로 유명하다. 분명 새로 만들어진 단어임에도 곧바로 어떠한 이미지나 감정이 머리를 스치고 마음을 울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유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통해 "가사를 쓴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훈련이 되는 것 같다. '이런 표현은 이런 식으로 해야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하더라'라는 게 생긴다"면서 "한글을 진짜 너무 좋아한다. 번역을 하면 한글의 맛이 표현이 다 안 될 때가 많고 우리나라만 쓰는 표현 같은 게 있다"고 전했다.

'사건의 지평선'으로 역주행 인기를 끈 윤하는 대부분의 곡을 한글로만 쓰는 대표적인 가수다. 그는 아나운서가 선정한 한국어를 사랑하는 연예인에 뽑히기도 했다.

윤하는 한글 가사를 쓰는 것과 관련해 "자부심"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팝스타와 록스타를 동경해오다 보니까 '나는 왜 해외에서 안 태어났지?', '나는 왜 댄서블한 음악이 많은 한국에 태어나서 더 나아갈 수 없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원망이 되기도 했는데 시대가 달랐던 것뿐이더라. 지금 BTS 등 우리나라 가수들이 여기저기서 인기 있고 국위선양도 하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별점을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네도 한번 부러워해 봐라', '이런 예쁜 말들이 너네한테도 있어?'라는 거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죽었다 깨어나도 외국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라 더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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