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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간 유럽의 데이터 센터 허브 역할을 했던 아일랜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데이터 센터 수요는 늘어나는데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서다. 아마존 등 거대 기술 기업은 아일랜드 이외의 유럽 지역에 데이터 센터 투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데이터 센터 증설을 희망했던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최근 아일랜드 대신에 독일, 스페인, 영국에서 새로운 데이터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400억 유로 이상을 투자했다. 또 다른 기술 기업의 한 경영진은 “기술 회사들이 전력 공급원으로 원자력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는 데이터 센터 후보지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FT에 전했다. 아일랜드 정부가 1999년부터 원자력 발전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FT는 “최근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아일랜드를 데이터 센터 허브로 활용하는 것을 재고하고 있다”며 “아일랜드의 명성이 손상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는 서늘한 기후 덕분에 냉방 효율이 뛰어나고 저렴한 전기료, 낮은 세율이라는 이점까지 더해져 많은 기술 대기업들의 데이터 센터 허브로 기능했다. 유럽이나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해저 케이블을 통한 송전도 유리했다. 지난해 기준 더블린에만 82개의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일랜드 정부가 2021년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대도시 지역의 데이터 센터 건설을 금지하면서 아일랜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국영 전력회사 얼그리드에 따르면 지난해 아일랜드 데이터 센터들은 아일랜드 전체 전력 수요의 21%를 차지했다. 비중은 2032년 30%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2050년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있는 아일랜드 정부는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 센터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 에이먼 라이언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FT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기업은 ‘기후 제한’ 내에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며 “어떤 산업도 우리가 직면한 기후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FT는 “환경 운동가들은 대형 기술기업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비판하지만, 이 기업들의 법인세는 정부 재정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아일랜드는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데이터 센터 투자를 유치해 520억 유로의 부가가치와 14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더블린에서 데이터 센터 건설이 중단된 지금은 아일랜드 기업들이 유럽 전역 데이터 센터에 그들의 기술 노하우를 수출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발전 부문 탈탄소화와 경제 성장의 조화를 위해 고심 중이다. 이달 중순 아일랜드 에너지 규제 기관 CRU는 대규모 전력 소비 기업에 대한 새로운 정책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저탄소 발전을 위한 까다로운 조건이 포함될 것이라고 업계는 예측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