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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새는 창고서 출발한 ASML…협력·뚝심 경영으로 세계 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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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이 처음부터 세계를 호령한 것은 아니다. ASML은 1984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반도체 장비업체 ASM인터내셔널(ASMI)의 합작 회사가 모태다. 반도체가 차세대 산업으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본 두 회사는 ASMI 리소그래피(노광 장비) 사업부를 떼어내 ASML을 세웠다. 첫 사무실은 에인트호번의 허름한 공단 내 물이 줄줄 새는 목재 창고였고, 직원은 100명이 채 안 됐다. 지금은 리소그래피가 반도체 핵심 기술로 올라섰지만, 당시로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모험에 가까웠다.

ASML이 성장 발판을 마련한 건 창업 2년 뒤인 1986년 ‘PAS2500’란 모델명의 리소그래피 초기 장비 ‘스테퍼’를 출시하면서다. ASML은 이 장비를 출시하면서 적자를 면하기 시작했고, 1995년 미국 나스닥과 암스테르담 주식거래소에 상장하며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렸다. ASML이 현재의 위상을 갖게 된 건 2001년 개발한 ‘트윈스캔’ 덕분이다. 트윈스캔은 한쪽에서 웨이퍼에 빛을 쬐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웨이퍼 위치를 조정해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에 힘입어 ASML은 노광 장비의 생산성과 정확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후 빛을 더 정밀하게 쏘는 새로운 장비 ‘이머전’을 개발하면서 극자외선(EUV) 양산의 발판을 다졌다.

EUV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EUV는 초고가 기술이어서 고객사가 한정적인 데다 연구개발(R&D)과 생산 비용이 극도로 높았다. 당시 반도체 장비 시장의 주류였던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 캐논토키와 니콘은 독자적인 광학 기술을 갖추고 있었지만, EUV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고 투자에 머뭇거렸다. 반면 ASML은 2010년 프로토타입 장비를 완성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ASML이 뚝심을 갖고 광학장비 개발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든 걸 공개하고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협력을 우선시한 기업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ASML은 범용으로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방식의 노광이 주류로 올라서기 훨씬 전인 2006년부터 EUV 연구를 시작했다. 2013년 미국 광원 기업 사이머를 인수했고, 2016년 독일의 유력 광학 전문 회사 자이스의 지분 24.9%를 사들이며 협력 관계를 다졌다. 자국 소재·부품·장비 업체와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타진했다.

EUV 노광기는 물론 심자외선(DUV) 노광기 제조에 협력하는 ASML의 파트너 회사는 5000개가 넘는다.

펠트호번=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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