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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번 있는 기회'…천재의 가장 뜨거웠던 2년 속으로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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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한 번 있는 전시.”

이런 평가를 받으며 세계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시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 시인과 연인’입니다. 모두가 이 전시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타임스, 가디언, 텔레그래프, 인디펜던트 등 영국 주요 매체부터 아트뉴스페이퍼, 아트뉴스 등 글로벌 미술 전문 매체까지 입을 모아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아무리 전시 주인공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라지만, ‘좀 호들갑스럽지 않은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같은 화가의 전시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작품이 많이 나올수록 그 가치가 확 뛰거든요. 이번 전시에 나온 그의 작품 61점은 모두 찬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들.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작 급의 작품도 상당수 나와 있습니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해바라기’ 등 각국 주요 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라 외부에 좀처럼 빌려주지 않는 작품들도 다수 나왔습니다.



이런 그림들이 다 함께 벽에 걸린 덕분에, 관람객들은 고흐라는 사람의 삶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 작품 설명을 비롯한 설명글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 대신 그림으로 보여줬으니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라는 거지요.

하지만 전시 하나 보러 런던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주요 전시 작품들과 함께 고흐가 보낸 ‘가장 뜨거웠던 2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미술관이 표기한 사실과 전시의 관점에 충실하되, 이해를 돕기 위해 고흐의 삶 이야기를 중심으로 흐름을 풀었습니다. 미술관에서 해설자의 해설을 듣듯 읽으시면 됩니다. 고흐가 생전 남긴 편지의 내용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고, 기사에 있는 모든 그림은 이번 전시 출품작입니다.
폭발하는 색채
누구에게나 항상 시간이 똑같은 밀도로 흐르는 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시간을 그저 흘려보낼 수밖에 없을 때도 있고, 짧은 기간 집중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시기도 있습니다. 출퇴근길 직장인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 90분은 월드컵 결승전을 뛰는 국가대표 선수의 90분과 다른 것처럼요.

고흐의 말년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시간이었습니다.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삶의 대부분을 방황하며 보냈습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판매원 일도 했고, 책방 점원으로 일하거나 탄광촌에서 전도사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겐 ‘못 써먹을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요. 그랬던 고흐가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건 27세였던 1880년. 그중에서도 우리가 아는 고흐의 명작 대부분은, 마지막 3년(1880~1890)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고흐가 1888~1889년의 2년 동안 그린 작품 61점을 다룹니다. 이 시기 고흐는 총 2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힘입니다. 그 시작은 1887년 10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그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려고 해. 빛나는 태양이 있고 모든 색이 살아 움직이는 남쪽으로 떠날 거야.” 자신만의 예술이 무엇인지 마침내 감을 잡은 고흐는, 작품 세계를 펼치기 위한 땅으로 강렬한 빛과 풍경이 있는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을 선택했습니다.

고흐가 찾은 답은 ‘색채’. 1888년 2월 남부로 이사를 한 그는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나는 색채로 만드는 새로운 미술, 예술적 삶에 의한 새로운 미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어.”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덧없는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던 인상주의자들을 넘어, 고흐는 예술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광경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과 생각까지 그림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 방법은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화풍)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 “상상력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보다, 상상력을 거쳐 표현하고 재창조한 자연이 더 깊은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어.” 단순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을 넘어,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캔버스로 보여주는 게 고흐의 목표였습니다.

물론 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녹색의 여섯 가지 색의 균형을 맞추는 건 정신적인 중노동이야. 30분 동안 수천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을 맡은 배우가 된 기분이야. 극도로 정신이 긴장되는 일이고, (색을 어떻게 쓸지) 건조한 계산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지.”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여전히 그는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했습니다. 고흐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은 너무나도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고흐에게는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노란 집, 그리고
고흐는 자신만의 ‘예술 천국’을 꿈꿨습니다. 말이 통하고 뜻이 맞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며, 함께 정원을 산책하면서 시와 그림을 논하는 그런 장소. 프랑스 남부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집을 산 것도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고흐는 집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예술가들을 초청했습니다. 집 곳곳을 예쁘게 장식하고 그 계획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해바라기 그림 여섯 점으로 작업실을 장식할 생각입니다. 가장 옅은 파란색에서 짙은 파란색에 이르는 배경에 거친 노란색과 주황색이 터져 나오는….”




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초청을 수락한 건 폴 고갱. 하지만 고갱과 고흐는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이기적이고 냉담한 성격의 고갱, 지나치게 말이 많은데다 안절부절못하는 서투른 성격의 고흐는 최악의 조합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때 고흐의 정신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천재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재구성해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천재라고 해도 이런 종류의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쏟은 나머지 일상생활에서 지장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수학 역사에 남은 천재들(존 내시, 마이클 아티야)이 풀리지 않는 문제(리만 가설)를 연구하다 마음의 병을 얻고 만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천재성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옵니다.




고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현실 세계에 딛고 있는 발은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은 꿈결처럼 다가온다….” “색채를 잘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시를 말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니?” 고흐의 그림 속 선과 색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자유롭게 날뛰기 시작했고, 그림 속 세상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고갱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최고 속력으로 질주하는 기차처럼 위태롭다.”

결국 파국이 닥쳤습니다. 12월, 고갱과 다툼 끝에 스스로 귀를 자른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고갱은 도망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랑을 꿈꾸다
자신을 이해해줄 동반자. 고흐는 평생 그런 사람을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영 젬병이었습니다. 어딘가 나사가 몇 개는 빠져 있는 듯한 성격과 행동거지, 좋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인한 지저분한 외모에 더해 이성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서툴렀기 때문입니다. 시와 소설을 통해 연애를 배운 탓에, 그는 늘 지나치게 격정적이었습니다. 혼자 사랑에 빠졌다가 차인 적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제멋대로 날뛰는 예술혼과 광기 속에서, 고흐는 자신이 원했던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세상을 더욱 간절하게 꿈꿨습니다. 고흐는 그렇게 상상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세상에서 그는 화가가 됐다가 농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벨기에 출신의 동료 화가는 시인으로, 잘생긴 군인 친구는 멋쟁이 사랑꾼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소박한 공원은 시인의 정원으로, 잡초가 무성한 정신병원의 정원은 연인들의 피난처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는, 밀짚모자를 쓴 고흐가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나마 고흐의 사랑은 아름다운 색채로 빛났습니다. “두 연인의 사랑을 보색, 혼합과 대비, 옆에 있는 색조의 신비한 떨림을 통해 표현하려 해.”




부모의 사랑과 이해를 충분히 받지 못했던 그는 스스로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889년 5월, 고흐는 동네의 평범한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립니다. 제목은 ‘자장가 - 요람을 흔드는 사람’. 손에 잡은 끈으로 아기가 자고 있는 요람을 흔들어 주는 이 여성을 고흐는 ‘어머니’를 대표하는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양옆에는 자신의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을 장식하려 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위안을 주는 장식과 같은 느낌으로 그림을 걸고 싶어.”

하지만 운명은 고흐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그의 정신은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폭주했고, 이듬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삶의 의미
하늘의 아득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는 경이로움과 두려운 기분이 함께 들 때가 있습니다. 우주는 무한하고 아름답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영원한 시공간 속에서 사실 나는 티끌만도 못한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 그 사실을 새삼 되새기면서 생기는 일종의 외로움과 두려움입니다. 이런 기분을 ‘실존적 불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전시에 나온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서 고흐가 이런 불안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고흐라는 사람. 늘 이해받지 못했던 그는, 자신은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가,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아닌가 평생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속도와 힘으로 그림을 그리며 창조력을 극한까지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 인간의 정신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부담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쓰러졌습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고흐가 삶의 무의미에 맞서 가장 격렬하게 발버둥 쳤던 2년간의 결과물입니다. 마치 그 거친 붓질은 고흐가 입은 상처, 흘러내릴 듯한 물감은 그가 흘린 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시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는 내용의 리뷰(가디언)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흐의 작품에는 이런 아픔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실존적 불안과 맞서 싸웠던 고흐의 투쟁이 누구보다도 뜨겁고 순수했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투쟁.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에는 그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 녹아 있습니다.

그림들을 통해 고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가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을 견뎌내고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그 발버둥 자체가 소중한 것이라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고. 내 존재가 담긴 이 그림들처럼, 당신이 실존적 불안에 맞서 싸운 흔적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남아 영원히 아름다움을 전할 것이라고. 고흐의 작품에서 전 세계인이 위안을 얻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는 내년 1월 19일까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고흐의 작품을 봤지만, 같은 화가의 전시라도 작품 선정과 배열에 따라 얼마나 그 차이가 커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고흐의 숨결을 이토록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열리길 바랍니다.

**오늘 기사는 전시 도록 ‘Van Gogh : Poets&Lovers’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런던=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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