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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오시 삼십분'에 담긴 우리말 역사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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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인천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오시 삼십분 / 한성 개성 간 보내는 시간 오전 구시 오는 시간 오후 이시 삼십분…(하략)” 1986년 4월 7일 창간호를 펴낸 독립신문에는 ‘우체시간표’라는 난(欄)이 눈에 띈다. 당시 우편물을 보내는 시간과 도착하는 시간을 신문에 공지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금과 다른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시간 표시를 ‘구시, 오시 삼십분…’ 식으로 한 게 그것이다. 요즘은 ‘아홉 시, 다섯 시 삼십 분…’이라고 한다. 시는 고유어 수사로, 분 단위는 한자어 수사로 읽는 것이다.
1, 2, 3을 일, 이, 삼으로 익혀
하지만 독립신문의 사례는 우리가 100년여 전, 즉 아라비아숫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 시간을 이 시, 삼 시, 사 시… 식으로 읽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랬을 만한 사연이 있다. 아라비아숫자가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채 안 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펼친 ‘문자보급운동’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브나로드운동’으로도 불린 이 문자보급운동은 ‘한글’과 ‘산수’ 두 갈래로 전개됐다. 그중 산수 교재에 아라비아숫자를 어떻게 읽고 썼는지가 나온다.

①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四 4 …. ②다음 수를 음으로 읽고 새김으로 읽고 또 쓰게 할 것. 十一 十二 十三 …. (동아일보사 <한글공부> <일용계수법> 1933년,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

당시엔 아라비아숫자를 한자어 ‘일, 이, 삼’으로 익혔다. 사실 1, 2, 3은 기호에 지나지 않고, 이를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자어 수사로는 일, 이, 삼이고 고유어 수사로는 하나, 둘, 셋이다. 영어에서는 원, 투, 스리가 되고 일어에서는 이치, 니, 산이라고 읽는다. 우리말에는 한자어 수사와 고유어 수사 두 가지가 있는데, 애초 아라비아숫자가 보급될 때 한자어 수사로 익힌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2명, 3차원, 4계절 등을 반사적으로 [이명, 삼차원, 사계절]로 읽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를 [두 명, 세 차원, 네 계절]로 읽어도 틀린 게 아님에도 여간해선 그리 읽지 않는다. 그러니 독립신문이 나오던 시절에 5시 30분을 ‘오시 삼십분’이라고 읽고 쓰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어의 자연스러움’ 좇는 게 순리
지금은 시(時)는 고유어 수사로만, 분(分)은 한자어 수사로만 읽는다. 개화기 이후 시와 분을 나타내는 방식이 분화됐을 것이다. 아마도 예부터 오랫동안 써오고 크기도 작은 단위명사 앞에서는 고유어 수사가 선택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고 규모도 큰 것, 또는 개념적으로 세분화된 단위 앞에선 한자어 수사가 자연스럽게 붙었을 것이다. 지금도 대략 숫자 10 이하는 ‘한 명, 두 표, 세 개’ 식으로 고유어 수사로 읽는 게 편하다.

10살을 우리는 ‘십 살’이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 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10세’는 ‘십 세’로 읽는다. 이런 사례는 표기는 물론 읽는 방식도 결합하는 양태의 ‘자연스러움’을 좇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는 영어식으로 읽을 때 자연스럽다. 그게 우리말이 지향하는 방향성일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3D’나 ‘빅3’같이 영문 약어로 된 말은 영어식으로 ‘스리디, 빅스리’로 읽는 게 편하다. 억지로 ‘삼디, 빅삼’이라 하면 어색하다.

말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아 인위적 ‘틀지움’은 좋지 않다. 다만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정하는 게 우리말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방향은 역시 ‘언어의 자연스러움’을 좇는 쪽일 것이다. 어떻게 읽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지는 개개인에 따라 제각각일 터다. 그것이 모이고 구체적 세력으로 떠오를 때면 그게 바로 ‘지배적 언어’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어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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