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오래된 미술관들이 최근 노후화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거나 계획 중이다. 단순 개보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니즈와 시대적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을 꾀하고 있다.미술관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건 무엇이고, 오늘날 오래된 미술관은 어떻게 응답하는지 흥미로운 소통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수집·기억하는 역사적 공간현대사회에서 미술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관을 단순히 그림이나 조각을 전시하는 전시관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미술관’이란 ‘미술 박물관Art Museum’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박물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Collection이다. 즉 ‘수집’ 기능이 필수적이다. 수집 기능 없이 전시만 하는 기관을 ‘전시관’ 또는 ‘전시장’이라고 하며, 미국에서는 ‘Exhibition Gallery’, ‘Exhibition Center’라고 부른다. 독일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Kunst Halle’, ‘Kunst Forum’을 사용하고, 영국이나 영연방 국가 또는 영국 식민지 시절 개관한 경우에는 ‘갤러리Gallery’를 미술관의 의미로 쓴다. 미국 워싱턴의 국립미술관을 ‘National Gallery of Art’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보통 갤러리라고 하면 미술품을 사고파는 소위 영리 목적의 상업적 공간을 말한다. 우리나라 역시 1992년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같은 기관인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른 기관처럼 분리해 기술하고 있다.
박물관으로서 미술관은 수집과 기억장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전통’과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서 깊고, 유동적 ‘변화’를 역사로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 꽤 신중한 기관이자 시설이다. 하지만 역사가 변화라는 물결을 타고 움직이듯 미술관도 새로운 시대 흐름 속에서 기관이 속한 사회의 요구를 수용함과 동시에 전통적 미술관의 수집과 조사, 보존, 해석 및 전시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지속하고 있다. 최근의 미술관은 교육적·문화적 차원뿐 아니라 오락성까지 갖춘 공공기관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강조된다.
잠들지 않는 미술관미술관은 변화해가는 사회를 반영하거나 때로는 변화를 선도해왔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역할에 충실하되 트렌드와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며 관람객과 가깝게 소통하고자 했다.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광장에 자리한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은 올해 개관 20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 재생 프로그램 ‘NG 200’을 시행하고 있다. 1991년 증축해 미술관 정문으로 써온 세인즈버리관Sainsbury Wing의 일부를 개보수해 편의 시설을 넓히고, 새로운 연구 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개관한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은 전시실 확대와 연구,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2016년 우크라이나 출신 자선가 렌블라바트니크Len Blavatnik의 기부를 바탕으로 행위 예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건물을 신축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도 개보수를 위해 파리 올림픽이 끝나는 올 8월부터 약 4년간 문을 닫는다. 1977년 개관 이후 1998년부터 약 2년간 보수공사를 했지만 냉난방 등 공조 부분과 에스컬레이터, 석면 철거 등 건물 성능 개선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2025년 10월, 63스퀘어 아쿠아리움 자리에 퐁피두센터의 분관을 오픈할 예정이니 이로써 아쉬움을 달래봐도 좋겠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도 대대적인 보수 및 증개축을 시작하며 수장고형 미술관 ‘디폿De Pot’을 열었다. 통상 미술관은 방대한 양의 작품을 보유하지만 제한된 전시 공간으로 대부분 작품을 수장고에 보관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폿은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면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박물관 역할까지 갖춘 셈이다.
영화 <록키>에서 인상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며 운동하는 장면에 등장한 미국의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은 개관 100주년을 맞아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게 미술관 증축을 맡기고 2022년 새로 개관했다. 미국 최대 규모이자 세계 5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도 약 6,100억 원을 들여 현대미술과 21세기 미술에 집중할 약 7,430m2(약2,250평) 규모의 새로운 미술관 증축을 끝내고 지난해 11월 개관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은 1929년 자선가들의 십시일반으로 설립된 근현대 미술의 성전으로, 지난 100년 동안 약 9회에 걸쳐 개보수를 진행한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1929년 헥셔 빌딩 12층에서 개관한 이후 1932년 현재의 53번가로 이전했고, 1937년 미술관 신축을 위해 또 이전했다. 2001~2004년 임시로 퀸스에 미술관을 이전하고 역사상 최대의 증개축 공사를 했는데, 그 기간만 2년으로 미술관 면적도 2배로 늘었다. 2016년 2월에 3층 높이의 넓은 2개 갤러리를 만들었고, 그 후 나머지 공사를 위해 2017년부터 문을 닫고 공사에 들어가 2019년 완공 후 재개관했다.
미술관, 창조적 재현이 갖는 의미미술관의 이런 변화는 동시대의 가치관과 기술을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재현Reappearing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복원’이 대상의 원형에 집중해 되돌리는 것이라면, ‘재현’은 대상을 다시 있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재창조에 가깝다. 이런 변화는 인류의 문화 자산이자 문명적 증거인 미술품의 수집과 보존이 주목적이던 미술관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시설 면의 개보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새 생명을 갖는 것과 같다.
좋은 미술관은 관람객을 부르고,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자 문화의 척도로 국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술관의 문턱이 낮아진 지는 오래다. 주말 데이트로 가기도 하고 영감을 받기 위해 홀로 찾기도 하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다 방문하기도 한다. 목적은 아무래도 좋다. 관람객이 있어야 생명을 얻는 게 미술관의 숙명이기에. 다만 오래된 미술관이 소통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만큼 미술관이 갖는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글.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